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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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본문 중)

작품은 새벽녁 항구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의 사랑하는 친구가 조국 그리스로 떠나며 주인공과 이별을 나눈다. '위험에 처한 수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 라고 말하는 그는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은 책벌레로 불리우는 스스로의 모습에 분노하며 자신이 살아온 것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보리라 생각하며, 크레타의 갈탄광에서 노동자의 삶을 꿈꾸며 여행을 결심한다. 그때 60대의 낯선 사내가 주인공에게 나타나고 자신을 여행에 데리고 가 달라고 매달린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본문 중)

떼쓰듯이 매달리는 이 사람이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인 이 책의 주인공이며 카잔차키스가 실제 여행 중 만났던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산투르라는 악기를 배우고 싶어 가진 돈을 몽창 털어 악기를 사서 1년동안 악기만 배우는 열정을 가졌고, 하느님과 악마를 동일 선상에 두는 그는 자신을 '자유'라는 말로 표현한다.

두 주인공은 완전히 상반되는 인물이다. 책 속의 ''는 글을 쓰고, 붓다의 사상에 심취해 있으며,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상으로 품고 있는 지식인이다. 이론 속에서 이상을 찾은 사람인 것이다. 반면 '조르바'는 행상, 광부, 군인 등 별의별 일을 다 해본 그는 세상을 자유로이 다니며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삶을 산다. 주인공 ''는 '조르바'의 거침없고 꾸밈없으며 솔직한 그의 행동과 열정에 끌린다. 이렇게 크레타에서 두사람의 동행은 시작된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신기해도 예사로 신기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내가 죽이고 사기 친 이야기를 다 한다면 두목, 아마 머리털 끝이 송두리째 곤두설 겁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 웃겨. 자유라니!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본문 중)

'조르바'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과부를 보면 본능에 충실하고, 법이나 제도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갈탄광에서 최선을 다하는 광부의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가엾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기보단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는 마음의 소유자. 자유와 방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는 그를 그래서인지 비난하기 어렵다고 할까.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덕적인 잣대와 규범이란 틀에서 살아와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란 의식이 '조르바'를 내 마음속에서 난도질하려고 한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추천하고 감동받았다는 '조르바'는 60을 넘긴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도 철없는 아이같은 순수함,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돈키호테같은 무모함, 무엇에도 구애받고 싶어하지 않은 자유로움, 마음이 가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 등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에 대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느님과 악마를 비슷한 존재로 정의하고, 종교에서 정의하는 선과 악의 본질적인 정의를 거부한다. 여기서 자유는 모든 것에서 자유를 말하지만 특히 인간이란 존재가 절대자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 죽음의 목전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을 인정하지 않던지, 신 앞에 부끄러운게 없던지 둘 중 하나의 의미를 받아 들여 진다. 이런 추측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리 자신있게 말한 카잔차키스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 세상의 틀이 그저 편안한 그래서 오히려 '자유'가 낯설고 불편한 나에게 이해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조르바의 삶이 내 삶에 당장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없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믿는 신에 대하여,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삶에 대해서 과연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쩜 조금은 다를 수 있다는 의구심이 아주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다. 1년쯤 지난 후 다시 한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 보고 싶다. 그때 이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은 어떨지 어떤 변화가 나에게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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