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현대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이라는 신화를 이루어냈다. 과거에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주여행을 통해 지구 밖 우주 공간을 직접 탐험해보고,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면서 지구촌 구석구석의 정보까지 모두가 공유할 수 있으니, 과학은 불가능도 가능케하는 힘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앞서가는 과학자 집단에서는 또 다른 지구를 찾고 있다고 하니 인류의 미래는 과학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듯 하다. 이렇듯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개척하는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여겨진다. 그 가능성이 있게 하기까지는 과거의 과학자들이 찾아내고 축적해둔 과학적 기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응용과학은 기초과학 없이는 발전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다. 그 기초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대한 의구심은 여지껏 깊이 인식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책의 지은이 장하석 교수는 현 케임브리지 대학교 석좌교수이며, 캘리포니아 이공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과학철학을 20년간 가르쳤으며, 얼마전 EBS 방송에서 12강에 걸쳐 강의를 한 내용을 기반으로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이 밖에 뛰어난 저술가로도 여러 상을 받은 이 시대의 석학이다.

1기압 상태에서 순수한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이 명제들을 당연히 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명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이다.
과학 교과서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에 대해 왜 그럴까 정말 그럴까란 의문을 가진적이 없다. 단지 정말 그런지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에서 그쳤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한 의문. 바로 그것이 철학의 시작인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된 틀이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시각이다. 이런 모습은 세상의 새로운 것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서 쏟아지는 의문과 흡사하다. 아이들은 하늘이 왜 파란지, 어른이 왜 일을 하는지, 자동차는 왜 빨리 달리는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은 왜 그렇게 불리는지 등 이렇게 많은 것에 의문을 가진다. 가끔은 어처구니 없는 질문들이란 생각을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사고에서 나온 질문인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절대적이라 믿었던 진리들이 새로운 이론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정상과학은 과학의 발전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과학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하며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반증주의라면, 이론에 대해 세부적인 문제들을 패러다임 안에서 해결하고 연구하여 전문적인 것을 얻어내는 것이 정상과학의 입장이다. 과거에서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이루어온 법칙과 원리를 배우고 익히며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정상과학의 자세인 것이다.

지금까지 배워온 과학적 진실을 철학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천동설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시대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들이 운동하며 우주 공간에 별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 당시에 관측되는 사실 중 천동설에 어긋나는 현상조차도 배제하며 천동설만이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으로 지동설이 대두되었고, 이후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의 관측에 의해 지동설이 증명되었다. 지동설과 함께 우주의 구조에 대한 주장은 관측된 자료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이렇듯 한계 없는 우주공간,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돌고 있지만,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는 등의 우주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이후의 우주는 1차원인 시간과 3차원인 공간이 합쳐져 4차원 시공 구조로 닫힌 우주라는 이론이 탄생한다. 크게 3가지의 패러다임을 거치며 발전한 과학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왔다.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관측 또한 절대적으로 정확할 수 없고, 관측이나 실험하는 것 조차 기존 사고체계가 영향을 준다(관측의 이론 적재성). 물이 100도 이상에서도 끓을 수 있고,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발견되었다는 것.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것은 진실이라 믿었던 이론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다원주의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목표가 동일하면 대다수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사람들이 실패자로 낙인찍혀 살아가는 불행한 사회가 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우리 각자가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특유한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다른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한 종목에서 뒤떨어지는 것 같으면 종목을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해야 효과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신이 나서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여러 갈래 길을 뚫고,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궁금해하고 자극하는 다원화된 사회야말로 성숙하고 효율적인 사회입니다. 과학이 다원주의적이라면, 그런 훌륭한 사회를 이루어내는 데 물질적인 기여를 넘어서 정신적, 철학적, 정치적인 기여를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P412


마지막 12장에서 저자는 다원주의에 대해 말한다. 다원주의는 다양한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말한다. 다원주의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우려해야 할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으니 다원주의가 또 다른 철학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철학이라는 학문의 역할을 책의 말미에 드러내고 있다. 고민이 없는 세상은 일방통행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철학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함으로 획일화라는 늪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다원주의에 대한 저자의 글이 현재의 정치, 교육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는 것을 건강한 경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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