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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새삼 이 말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곳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진실과 정의가 얼마나 잘 실현되고 있을까.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상대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나의 억울함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내 삶의 굴곡이 평범해 아직은 그다지 억울함이 뼈에 사무치는 일은 못 겪었지만 요즈음 그런 의문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청에 대한 정부의 명확치 않은 태도, 그 일을 바라보는 소위 권력층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발언들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내가 그 일을 당하지 않았을 뿐이지 만약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소설 속으로
자수성가한 판사 하지환이 책의 주인공이다. 불우한 환경을 노력과 인내로 이겨내어 법대를 입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관이 된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아들을 열심히 공부시켜 법관을 만드는 것이 어머니의 오랜 숙원이었다. 경계적 궁핍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아들의 출세를 통해 보상받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의 보살핌에 대한 경험도 없다. 모자가 살아가기 위해 삶의 무게를 버텨낸 어머니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법관의 꿈을 이루기 전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신다. 류마티스 판정을 받고 7년 동안 독한 약을 복용 후 위암으로 투병하다 아들의 길에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혼자 세상을 등진다. 우연히 어머니의 손가락 사진을 본 후배의 ‘류마티스가 아니다’는 말에 한때 작가가 꿈이었던 어머니의 일기장의 내용과 병원기록을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담당의 우동규의 사기 진료임을 밝히게 된다. 많은 환자들에게 거짓으로 류마티스 판정을 내려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게 하고, 비싼 약을 복용하게 함으로 병원은 장사하고, 제약회사에는 약을 많이 팔게 한 대가로 뒷돈을 받는 전형적인 사기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한 양심없는 의사의 모습을 우동규라는 등장인물은 비열하게 심지어 자존심도 없이 그러면서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힘을 충분히 활용하는 비겁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인맥이 그물망처럼 엮여 있는 거대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부패하고 양심없는 의사를 상대로 하는 법정소송은 현직 판사라는 신분도 큰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기 위해 그리고 양심없는 우동규에 의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법정까지 간다. 결국 우동규의 사기진료와 그것을 방치한 신해성모병원의 잘못이 인정되고 승소하게 된다. 하지만 배상금은 700만원.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신해시라는 좁은 곳에서 기득권자들끼리의 연합을 깨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사기진료로 인해 사람이 죽었고 그것에 대한 처벌이 벌금이라니.
주인공 하지환에게는 공황장애와 여자친구에 대한 정상적이지 않은 집착과 함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후배의 소개로 정신분석을 받게 되고 자신의 무의식이 현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과거의 기억 속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에 의해서 자신이 짊어지고 있고 감당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들의 실체를 찾으면서 점차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Mama, Just killed a Man
책 제목 <보헤미안 랩소디> 는 주인공이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노래이다. 초등학교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두 살 많은 형 백사자가 좋아했던 곡이고, 중학교 같은 반 친구 나훈아와 함께 즐겨 들었던 곡이었다.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퀸의 곡으로 한동안 가사의 내용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었다. 이 곡을 좋아했던 백사자는 익사하고, 나훈아는 그 곡을 들으며 자살한다. 책의 마지막엔 반전이 있었다. 법의 정의로 심판되지 않았던 우동규는 실종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의식 속 화장터 불가마에 태워진 사람에는 우동규도 있었고, 언젠가 자신도 있을꺼라고.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이 책을 쓴 작가 정재민은 현직 판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2014년 10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의 특이한 이력 덕택에 책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았다.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동전의 양면이 공존한다. 한쪽만 있지도 않고 두가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함께 존재하므로 다른 한쪽이 더 빛나기도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정의에 대한 바램은 강렬해지고 정의의 실현에 목말라하게 된다. 지금이 그런 시점일까.
현직 판사가 정의로움에 대한 문학작품을 썼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다. 작가의 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정의에 대한 태도가 직업적 소명이라고 믿고 싶다. 그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진실을 밝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유일한 해결책일테니.
저는 인간의 위대함을 믿지 않는 쪽이지만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은 믿습니다. 제게 가장 가치 있는 공부는 인간에 관한 공부이기에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는 문학의 주변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판사가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이기도 합니다.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면에서 저는 재판과 소설을 달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텍스트나 기술을 압도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