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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소소한 풍경. 그 제목이 얘기하는 것은...
ㄱ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ㄱ은 대학시절 스승에게 전화를 한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뜬금없는 질문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ㄱ은 대학시절 만났던 남자1과 결혼해 1년을 살고 헤어진다. 사랑한다 여겼던 남자1을 믿었고 그에게 시집가는게 유일한 꿈이었던 그녀이다.하지만 결혼 후의 생활에서 ㄱ은 남자1의 변해가는 모습 아니 실체를 직면하게 된다. 선인장을 싫어하는 남자1은 ㄱ에게 "너는 선인장이야!" 라는 말을 한 후 그녀를 떠난다.ㄱ은 남자1과 헤어진 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소소로 돌아와 ㄴ과 ㄷ을 만난다.
ㄱ의 앞에 ㄴ이 어느날 나타난다.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난 ㄴ은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ㄱ은 갈 곳 없는 ㄴ을 동거인으로 받아 들인다. ㄱ은 한때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1과는 대조적인 ㄴ을 관찰한다. ㄱ은 있는 듯 없는 듯한 ㄴ을 지켜보며 자신을 조용하게 배려하는 그에게 점점 빠져든다. ㄱ과 ㄴ이 깊은 관계를 맺은 다음 날 ㄴ은 사랑의 징표라도 되는 냥 어머니의 벽조목 목걸이를 ㄱ에게 건네준다. "우물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ㄱ의 말에 ㄴ은 우물을 판다. 아니 정확하게는 '청춘의 빛이 떠오르는 샘'을 판다. 그렇게 ㄴ은 ㄱ의 곁을 조용히 지킨다.
ㄱ과 ㄴ이 한달 남짓 함께 했을 즈음 그들 앞에 ㄷ이 나타난다. 셋방을 찾는다며 ㄱ의 집으로 찾아온 조선족 처녀를 냉정히 보내지 못한다. 하룻밤만 재운다는 것이 3인의 묘한 동거로 이어진다. 생물학적으로는 ㄴ은 남자, ㄷ은 여자, 그리고 ㄱ은 여자이지만 ㄱ은 ㄴ과 ㄷ을 남자라 표현한다. 그녀가 만나고 헤어진 남자는 남자1, ㄴ, ㄷ 이라고.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아픔을 안고 있다. ㄱ에게는 오빠가 있었다. 어느날 말더듬이 착한 오빠가 성벽에서 떨어져 먼 곳으로 가버린다. 그리곤 오빠의 유골을 품고 있는 주목을 보러 가던 어머니, 아버지를 사고로 잃게 된다. 여고 2학년 여름에 겪에 된 일이다.
ㄴ은 고등학교 1학년때 계엄군에 의해 형과 아버지를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요양소로 보내진다.
ㄷ은 탈북하는 과정에 아버지를 잃고 장춘의 조선족 사씨네에서 일을 도우며 살았다. 어머니, 오빠와 ㄷ이 탈북자라는 것을 사씨가 알게 되고 오빠는 공안원에게 넘기고 어머니와 ㄷ은 사씨의 짐승같은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고 만다. 그녀의 나이 열여섯때 였다.
총 맞아 죽은 형 - 아버지를 세상에서 '폭도'라고 부를때, 어머니를 업어 요양소에 맡기고 혼자 떠나올 때, "어디 감히 끼어들려고 해!"하고 밴드의 기타가 말했을 때, 아무런 안전장치 없는 쇳물 통에 점박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쑤셔 박힐 때, 내 오장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던 말이 그거라는 걸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답니다. 그녀의 외침이고 당신의 외침이고 나의 외침이었던,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는 그 말. -P202
우물이 완성되던 날 그들만의 파티를 끝내고 우물 속으로 ㄴ은 영원히 사라진다. 우물 곁에서 ㄷ이 시멘트를 붓고, 그 모든 상황을 짐작했음에도 ㄱ은 침묵한다. ㄴ과 ㄷ을 떠나보낸 후 ㄱ은 느닷없이 선생님을 떠올린다. 대학 첫 등교날 차도에서 친절히 양보해준 선생님의 친절한 손을 기억하며.
가시는 살아 있는 선인장의 데스마스크라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나온 ㄱ의 아버지를 반겨 주었던 것은 동료도 세상도 아닌 선인장이었다. 꽃을 피운 채 ㄱ의 아버지를 맞아 주었던 '유일한 동지' 선인장이 지금은 ㄱ의 곁에 있다. 고통의 기억이 각자의 내면깊이 가시가 되어 죽음의 형상을 떠올리는 데스마스크.
ㄱ,ㄴ,ㄷ의 관계를 책에서는 덩어리라 표현한다. 흔한 섹스란 표현을 찾기 어렵다. 생물학적인 성별과 상관없이 ㄱ과 ㄴ, ㄴ과 ㄷ, ㄱ과 ㄷ 때론 모두 함께 그들만의 유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은 어떤 순간을 꿈꾸었을까.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성적 쾌락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픔을 채우려는 몸부림. 그들에게 사랑의 행위는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아니었을까.
사랑이 있다면, 그래요. 사랑이 있다면요, 그것은 출발-종말이 접합된 완벽한 원형일 거예요.
문제는 그것이 불변의 고형(고형)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겠지요. 만나고 나면 곧 다시 엇갈려 지나가는 게 원형의 운명이잖아요. 이를테면 모든 사랑은 만나는 순간 이별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아침 식탁에서 바로 그 점을 깨달았어요. 당신과 원형으로 만났으니 이미 이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는 것을요.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은 모두 그 과정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오래 지녔던 그 벽조목 목걸이를 다가올 이별의 징표로 그때 당신에게 준 거랍니다. 요양소에 어머니를 맡기고 떠날 때 가져온 어머니의 살점 같은 그 목걸이요. -P163
아픔의 닮음꼴로 인한 감정적인 끌림과 동조가 도덕이란 규율을 넘을 수 있을까
셋이 하나가 된 순간을 영속시키기 위해 ㄷ이 죽음을 선택하려 할때 ㄴ은 침묵한다. ㄴ이 우물 곁에서 사라지고 ㄷ이 그 자리에서 시멘트를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을 ㄱ은 모른척 한다. 이야기의 전개로는 분명 ㄷ이 ㄴ을 우물로 떠밀어 살해한 것인데 ㄴ의 선택일 수도 있다는 공감도 생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적 잣대는 이들의 사랑이 윤리적이지 않은 행위이며 ㄴ의 죽음에 대해서도 살인방조죄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란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ㄱ의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도. 선생님의 ㄱ에 대한 기억도.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음을 여운으로 남긴다.
책의 제목으로 돌아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이들 삶의 언저리를 맴돌며 서서히 그들의 주변부터 삼키고 있는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소소한 풍경이 아니다. 소소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인듯. 아픔을 가진 그들의 사랑은 나에겐 사랑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끝닿을 수 없는 아픔을 채우기 위한 행위. 아무리 애써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삶을 부여잡고 온몸으로 발버둥치는 모습이랄까. 이런 책을 쓴 작가는 어떤 분일까? 한 동안 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