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즐거움 - 인문학자 김경집의 중년수업, 개정판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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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매일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이 아기의 소임이고 그걸로도 족하다. 하지만 그 아기가 자라남에 따라 해야할 몫들은 변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하고, 대학가서는 좋은 직장, 그 다음은 결혼 잘해야 하고...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그 나이에 맞는 몫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그 시간을 산다. 그런 후 넘어지지 않고 잘 걷게 되면 뛰어 가게 되고,한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열심히 그 시간들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다 문득 지금이 어디쯤인가 멈춰 서보니 중년이라는 시간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딱 중간. 세상의 빠른 변화와 흐름에 마음은 따라갈 수 있으나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이듦. 그 말은 아직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김경집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때로는 맛깔스럽게 그리고 감성이 풍부히 베어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책속에 퐁당빠진 느낌이다. 일상의 생각들을 짧은 글로 표현했지만 따뜻하고 온화하며 지극히 겸손하게 느껴진다.

 

쉰의 문턱에서 닮고 싶은 삶

​줄리어드 강효 교수를 닮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강효 교수는 바이올리니스트지만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고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많은 분이라 한다. 그분의 진심을 따뜻한 미소를 통해 드러내는 분.

서둘거나 채근하지도 않고 느슨하거나 게으르지도 않은 그의 모습은 쉰의 문턱에서 정말 닮고 싶은 삶입니다. 그는 결코 화려한 사람도, 거만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한결같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듭니다. 카리스마란 건 바로 그런 거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는 분입니다. -P36

 

나의 청소년시절 <갈매기의 꿈>을 읽으며 조나던이 멋져 보이면서도 그 인생이 고단하게 여겨졌다. 그냥 운명에 순응하면서 그 무리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내 인생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조나던이 특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세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꿈을 접지 않았고, 노력하고 이루어 가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체된다는 것은 내면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더 높이 더 빠르게 날 수도 없고 그 꿈도 접었지만 유장하게 바람처럼 날아야 한다는 새로운 자각만은 분명히 갖게 됩니다. 이제 겨우 한 가지 공부가 끝났을 뿐,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할 때입니다.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두고 두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이제야 서투르게나마 수평비행을 시작합니다.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P67

 

나이가 들면 막연히 이럴 것이다는 기대가 있었다. 세상을 아는 지혜가 넓고 깊어질꺼라고 말이다. 가끔 어디선가 등장하는 원로들은 지혜롭고 온화하며 때로는 결단력있고 한편으론 너그러워 젊은이들의 서투름을 다 덮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그런 노련함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은 그 많은 것을 한데 어우를 수 있는 노련함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안과 밖이 어긋나지 않고 밖이 안을 당기고 안이 밖을 살찌우는 당당함이 드러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어찌 보면 어설픈 나이일지 모르지만 안팎이 촘촘하게 아귀가 맞아가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가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남은 열정과 희망과 시도들이 쉰 못 미친 삶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싱그럽게 만들겠지요. 되돌아 내려오는 산길에서 향긋한 솔잎더미를 밟으며 이미 식어 마른 땀이 시원했습니다. -P73

하지만 제 나이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자기 나이만큼의 울타리에서 싸우고 이겨내고 상처를 입으면서 또다시 도전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빌려 입은 옷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조심스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광고의 문구처럼, 10년이 지나도 처음같이, 1년이 지나도 10년 같이 싱싱하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P103

중년이란 나이가 되기까지는 많은 만남과 이별을 하게 마련이다. 어렸을때는 이별이 많이 서운하고 가슴 아팠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세상 이치려니 생각하려 노력했다. 인연이 이뿐이겠거니 다른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거니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문외듯이 내 마음을 달래 보아  만남이 설레이고 이별이 가슴 아픈건 매양 한가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마음이 들고 난 뒤의 수습이 예전보다는 짧다는 것. 세상살이에 좀 담담해지면 좋으련만. 친구와의 마지막 해후 부분에선 나에게도 먼저 보낸 이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마음이 아프다. "자네가 있어서 내 삶이 행복했어. 고맙네. 한참 뒤에 또 보자구." -P135

 

죽음에 이르러 그 삶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억울하게 궁형을 당하고도 자진하지 않고 끝내 <사기>를 썼던 사마천처럼 나머지 삶의 의미와 목적을 향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가끔은 쉬기도 하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겸손한 삶을 마치면 한 그루 나무 아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P158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다. 20대에는 풋풋한 젊음은 있었으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막막함이 있어 그때를 떠올리면 회색빛으로 그려진다. 지금보다는 더 열정적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 터인데 행복하다거나 만족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30대에는 무언가 이루긴 했지만 너무 바쁘고 되돌아볼 시간이 없어 그때를 어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치열하게 살았고 후회도 많이 했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뿐. 이젠 불혹의 나이. 여전히 흔들림이 많지만 지나온 시간보다는 덜 어지럽다. 여전히 조급하고 여전히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안되는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다고 생각되는 시기. 한낮의 태양은 그 열기로 눈조차 마주치기 어렵다. 하지만 저녁 노을의 태양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여져 있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린다. 매혹이라기 보다는 온화함에 가까운 이끌림이라고 할까. 인생의 황혼도 곱게 물든 저녁 노을처럼 온화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작가의 글이 그 노을을 닮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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