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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 최신개정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표지를 보고 한 무신론자가 크리스챤으로 회심하기까지의 내용을 다루었다기에 간증 한 편을 보게 될 줄 알았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사람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상상했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떠올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고 그 분의 사랑만이 우리의 참 희망이 된다는 구구절절 맹목적인 믿음을 드러내는 그런 간증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책을 덮고 보니 제목이 책 내용을 참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주인공인 작가는 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분으로 평론가, 언론인, 교수 심지어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신 분으로 수많은 글과 강연을 통해 많이 알려지신 이어령교수(이 직함이 가장 익숙하다)셨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셨고, 이 책은 일기형식의 글과 시로 구성되어 있고, 간혹 언론매체의 인터뷰 형식의 글들이 편집되어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책은 4부로 교토, 하와이, 한국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문지방 위의 대화라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교토에서 찾다'에서 작가는 철저히 외롭고 고독한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그의 내면에선 무신론자라지만 지식으로 알고 있고 공부해왔던 성경의 말씀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경험이 무신론자에서 하나님께 다가감이라 했지만 사실 무신론자와 크리스챤의 경계가 모호함을 느낀다. 이 분 같은 경우는 이미 머리로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믿고 있는데 이 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인가? 세례를 받고, 받지 않음은 형식의 차이일뿐이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갈증을 느끼며 갈망했다는 그 순간 이미 이 분은 마음에 하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와이에서 만나다'에선 딸의 실명소식을 듣고 하와이에서 서원기도를 한다.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 동안 밀쳐내고 거부하며 낱낱히 분석한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일수록 신앙을 가지기 어렵다고 한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자신의 논리로는 납득되지 않는 신앙의 신비를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식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자신의 자존심을 던져 버리고 온전히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자식에 대한 큰 사랑이 느껴짐과 더불어 이미 마음속엔 그 분이 함께 하셨던 것이다.
"한국의 어떤 교회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난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들은 모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달라고 빕니다.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아이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젊은 사람이나 살찐 사람이나 야윈 사람이나 엎드려 기도를 드립니다. (중략)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P146~147
나는 나의 믿음을 '교토'에서 찾고 '하와이'에서 만나 '한국'에서 행하는 과정으로 작은 쉼표를 찍었던 셈이지요. 딱 서원한대로 행하신다. 여전히 많은 논리와 신앙을 접목해서 설명하지만 그러면서 스스로가 신앙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유일한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것도, 어머니나 조상을 대하는 마음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던 철저함으로 스스로를 설득시켜 가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문지방 위의 대화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시는 겸손함까지 보게 된다.
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백 퍼센트 신자는 못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밤에 자다가도 불현듯 회의와 참회를 되풀이하면서 살지요.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P277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고독에서 그 외로움 때문에 완벽한 사랑을 갈구하며 신을 찾은 것이라고 한다. 내 안에 신앙을 향한 마음이 그런 마음일까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 절대자의 구원에 동참한 사람이 되었다가 너무나 쉽게 냉담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 믿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곤 적당히 내 자신을 변호하며 잘 포장하면서 살아 왔다. 그런 시간을 거쳤기에 아직도 내 안에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이런 마음 상태로 책을 접해서 인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서문의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문 앞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