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인간이 유일하게 지녀야 할 삶의 정의
피에르 라비 지음, 배영란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원시사회에선 인간이 존속하기 위해 자연에서 사냥하거나 열매를 따거나 물고기를 잡았다. 그 이후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좀 더 적극적인 먹거리를 만들었고, 산업화가 되면서 농업인구는 도시로 집중되어 작은 규모의 농경사회는 대규모의 농장으로 변모해간다. 소나 사람이 직접 경작하던 것을 규모가 커져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대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소위 생산증대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류의 식량란을 해결해주는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이며 그것의 결과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황폐해져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대량생산의 숨은 함정은 그 결과물을 위해 석유자원을 사용하는 기계를 이용해야 하는 것과 작은 규모의 농경사회에서는 사람이 잡초도 뽑고 해충도 잡았던 것을 농약이라는 화학물질을 대량살포하면서 인간의 수고로움을 줄이며 수확량을 늘려간다. 하지만 그 결과 토양의 오염등 심각한 자연이 파괴되고 그 땅에서 나는 수확물은 인간에게 이롭지 않은 먹을거리로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 인간에게 재앙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은 우리 의식의 패러다임까지 바꿔 버렸다. 원시시대에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자연과 생물에 의존하지만 결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취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함부로 살생하거나 모으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먹이사슬 관계에 있는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포식자와 포직자가 잡아먹는 짐승들이 함께 물을 마시는 모습을 통해 포식자는 배고프지 않고는 사냥하지 않는걸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살 정도의 '돈' 이상을 원한다. '돈' 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의 '돈'이 있으면 우리는 행복해질꺼야 미래가 보장될꺼야 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돈' 이 사회의 계급을 만들고 그 계급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돈'의 피라미드 최상위층인 신흥귀족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가는 듯 하다. 일반인들은 열렬히 상위계급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돈'을 위해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소비문화는 어떠한가. 새로운 유행에 따라 옷, 가전제품, 집의 가구 등 유한한 자원으로 만들어낸 많은 물건들을 쉽게 버리고 새로 구입 갈망한다. 과도한 소비문화와 그것에 무감각해진 세태를 피에르 라비는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당장 나만 해도 반드시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은 소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장난감도 집에서의 먹거리도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같이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고.

 

피에르 라비는 말한다. 그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소박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적게 소비하고 최대한 아끼고 많은 소유를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가난할때는 조금의 채워짐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욕망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절제의 삶은 기쁨의 원천이다. 보다 쉽게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이 갖지 못해 생기는 좌절감을 느낄 일도 없다. 이러한 좌절감을 부추기는 유해한 광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한다. 광고의 노예로 전락한 아이들은 감각을 상실하고 쉽게 환멸을 느끼며 모든 것을 '빨리 빨리' 해결하려 한다. 참을성을 범상치 않은 대단한 능력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인스턴트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46

피에르 라비는 단호하다. 반드시 소박함을 찾아 추구해야만 우리는 지구를 살리고 우리의 황폐해진 마음을 살릴 수 있으면 아이들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말이다. 누구나가 피에르 라비처럼 재단을 만들고 생태를 살리기 위해 인간이 존속하기 위해 지구를 살리는 일을 거창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평범한 한 인간일뿐이니. 하지만 자발적 소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다.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하셨듯이 구멍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비누조각을 망에 넣어 끝까지 사용하고, 가까운 곳은 걸어다니며 자전거를 생활화하고, 생활용품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수명이 다할때까지 사용하는 등 주변을 둘러보면 사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자발적 소박함을 작은 것부터 실천하며 '나 하나 실천한다고 달라질까'는 생각은 우선 접어두고, '나 하나라도' 라는 마음으로 실천하여 내 아이에겐 지금보다는 건강한 지구를 물려줘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일관될 수 있도록 당연히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모순된 상황을 가급적 일관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뭐든 다 잡아야 한다. 특히 작은 실천의 중요성과 그 위력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나는 항상 이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상황이 변화된다고 느낀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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