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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글을 모아 산문집으로 엮은 책이 「노란집」이다. 마흔의 나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되시며 작가로 활동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글을 쓰셨으며 「노란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서문의 박완서 작가 따님의 글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마음이 묻어 있다.
'그들만의 사랑법'의 노부부는 요즈음에 흔히 볼 수 있는 커플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권위를 가지고 애정표시가 서투른 남편으로 부인을 알뜰살뜰 챙겨주는 방법을 모른다. 마음이 없어라기 보다는 어찌 사랑을 표현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며느리가 선물로 준 영광굴비를 마나님이 전화 받으러 잠깐 비운 사이에 뼈만 남기고 깨끗히 먹어 버린 영감님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얄밉고 무정하게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불평하지 않는 마나님이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꽃다운 나이에 두 사람은 만나 긴 세월을 함께 하며 서로에겐 가장 필요하고 편안한 존재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은 아닐 것이다. 그 모습이 때로는 초라하고 누추해보일지언정 외로워 보이지 않음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노란집에서의 일상들을 들려주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변화,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받은 큰 사랑에 대한 생각, 집안 사람들을 유난히 힘들게 했던 할아버지께서 손녀딸을 이뻐하셨던 기억들, 행복에 대한 것, 어머니의 학구열에 서울로 유학하면서 겪게 되는 일 등 이 글을 쓰시면서 세상과의 이별을 천천히 준비하셨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다.
"하늘이 낸 것 같은 천재도 성공의 절정에서 세상의 인정이나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그 성취감은 순간이고 그 과정은 길고 고되다.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 말이다. 이왕이면 과정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결국 과정의 연속일 뿐 결말이 있는 게 아니다. 과정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 등 만나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 P 66
책을 읽다보니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타고난 글재주와 함께 많은 경험이 바탕으로 되어야 하지 싶다. 충분히 사랑받은 추억과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그리고 그 긴 터널을 지나오며 극복해나온 순간들이 작가의 글 속에 살아 감동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는 안계시지만 그 분의 작품을 통해 숨쉬고 계시는 작가를 떠올릴 수 있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의 글만큼 따뜻하고 정겨운 삽화들이 노란집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얼마전 온라인서점에서 진행했던 노란집 방문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었는데 시간이 안맞아 포기했던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