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나만의 생활패턴이 존재한다. 직장인이기에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고, 퇴근 후엔 집에서의 일이 나를 기다린다. 5일의 근무가 끝나면 꿀 같은 주말이 나를 기다리고, 쉼과 여유로움, 집안 일로 주말을 보낸 뒤에는 어김없이 1주일의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이런 일상에서 탈출하는 방법 중 여행만한게 또 있을까? 여행! 참 가고 싶다. 그러나 바로 실행할 용기는 없고, 그러다 읽게 된 책이 <아내와 함께 하는 지구촌 산책> 이었다.
30년차 부부가 떠난 세계여행 이야기
저자는 만 57세 되던 해에 안식년을 스스로에게 선물한다. 정형외과 의사이자 세아이의 아빠로 살면서 여행에 관심이 많았고, 대한항공에서 진행하는 세계 일주 프로그램을 접한 후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일주 계획을 세운다. 부부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책을 사고, 영어 회화 공부, 수영 강습 등 일상을 살아내면서 여행을 위한 준비를 치열하게 한다. 이렇게 준비하고 그들은 용감히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독일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유럽의 곳곳을 직접 운전해서 여행했고, 이탈리아에선 지인부부를 만나 패키지여행에 참여한다. 부부만의 여행도 의미 있지만 긴 여행 중에 짧은 시간이더라도 지인들과 함께 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지인부부와는 헤어져 나머지 유럽을 여행한 후 북아메리카로 향한다. 많은 곳을 구석구석 여행하고는 작은누님이 있는 뉴욕에 도착한다.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그리고는 동아시아로 여행을 이어간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세자녀가 여행에 합류하고, 다음으론 어머니와 큰누님도 여행에 동참한다. 여행의 중간 중간 함께할 동행자를 기가막히게 잘 배정했다!
물갈이를 준비할 것(비상약), 여행보험을 반드시 가입하기, 미처 다먹지 못한 포장김치는 반드시 터트려서 처리하기, 몬테네그로의 교통단속주의(사기?), 주차주의(횡단보도선), 먼 길 떠날때는 렌터카의 기름채우기, 남미여행시 벌레주의 등 저자가 여행하며 곤란을 겪었던 부분은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두부부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소설처럼 술술 읽혔다. USIM이 불량이어서 곤란함을 겪는 작은 어려움 부터, 갑작스런 부상으로 수술하는 큰 어려움까지 읽으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래서 젊은 나이에 여행을 다녀야 하나 싶다가도, 젊은 사람들의 톡톡튀는 여행과는 다르게 묵직하고 잔잔하며 진지하기까지 한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도 사소한 걸로 맘 상해서 부부간에 투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부부의 모습 그대로가 보였다.
이 책은 여행을 다녀온 부부에게 모험을 함께한 추억이 담겨 있는 보물일 듯 하다. 여행 수필집의 형식을 띄고 있어 부담없이 읽기에 좋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행 전 정말 많은 시간 준비를 했을텐데 준비에 대한 과정이 담겼다면, 여행지는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되었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등 상세한 준비과정이 있었다면 독자의 편에선 유익한 정보까지 되었을텐데 약간 아쉬웠다. 젊은 나이가 아님에도 여행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행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 열정이 부러웠고, 책 중간 드문드문 그의 생각에서 흘러나온 글들이 어느 철학자 못지 않은 울림을 줘서 좋았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삶의 방향이 좋다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