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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준 PD 제주도 한 달 살기 - PD의 시선으로 본 제주 탐방 다이어리
송일준 지음, 이민 그림 / 스타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의 이동이 제한된지 벌써 2년째 접어들었다. 간혹 이 와중에도 용감하게 여행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국내여행에 눈을 돌린다. 국내여행 중에서는 제주여행이 가장 인기이다.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이고, 이국적인 풍경과 화산에 의해 생긴 독특한 지형 탓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여행지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주로 이주도 많이하고, 제주 한달 살기라며 아이들 방학을 틈타 엄마와 아이들이 제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제주 뿐만아니라 해외에서의 한달 살기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다보니 어느새 나의 버킷리스트에 '한달 살기'가 떡하니 자리잡게 되었다. 패키지 여행처럼 시간에 쫓기고 일정에 압사당할 것 같은 여행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간 여행지에서 게으름으로 시간을 뭉개는 것도 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놀면서 쉬면서 천천히 주변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 앞으로 다시 여행이 가능한 순간이 온다면 생활하는 것처럼 여행을 즐기고 싶다. 가고 싶은 곳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면서 많이 걸어도 보고, 사진도 실컷 찍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생활해보고 싶다. 나도 그리 멀지 않은 순간에 퇴직을 할꺼고, 그 후에는 버킷리스트를 벽돌깨기처럼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그 시작이 제주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지금은 집에 TV가 없지만 예전에 TV가 있었던 시절 즐겨보던 프로를 만든 PD님이 책의 저자이다. 퇴직 후 부인과 함께 제주에서 살았본 33일의 기록을 이 책에 남겼다. 서울에서 차로 완도로 이동,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항에 도착, 법환마을에서 33일간 집을 빌려 생활한다. 날씨에 따라 방문지는 달라질 수도 있고, 때로는 찾아간 곳에서 입장 시간이 맞지 않아 허탕치기도 하고, 잘못 찾아가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주라는 섬사람들의 시간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독특하고 예쁜 카페가 많기로 소문난 제주에서 들르고 싶은 카페, 현지인들이 즐겨가는 식당을 가는 즐거움이 커보인다. 역사의 흔적이 있는 기억해야하는 장소도 중요한 곳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현재의 문화가 꽃피고 사랑받고 있는 장소는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준다. 특히 여행에서는 가성비 좋은 현지식당을 방문하게 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비양도에서 불쑥 들어갔던 갈치조림을 먹었던 봄날과 옥돔구이가 3마리나 나오는 곤밥2도 꼭 가보고 싶다. 매일매일 빼곡하게 여행 다닌건 아니지만 정말 많은 곳을 구석구석까지 다녔으면 상업적인 장소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내가 방문했던 동일한 곳을 갔음에도 나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그가 살아온 생각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배편이 끊겨 비양도만 가고 차귀도를 못간 것에 대한 불평을 부인이 했다는 대목에선, 여느 부부들과 비슷하구나 그냥 넘겨 짚었었는데 남편이 바이크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심지어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바이크를 타라고 해주는 작가의 와이프의 넓은 아량에 놀라고, 장모님 쓰러지셨을때 남편 가고 싶은 곳에 실컷 다니라고 혼자 두고 서울로 간 그 마음에 또 감탄하게 된다. 수십년을 함께 살아오며 함께 나이듦이 서로를 더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임을 이 분들을 보며 배운다. 여행의 곳곳에는 SNS를 통해 알게된 사람들, 직장 동료, 동료의 가족, 오랜 친구들이 함께 했고 그래서 저자에겐 좀 더 특별한 시간이었을듯 싶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작가의 생각, 여행지, 내가 갔던 여행의 기억등이 짬뽕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딱 한가지만 떠오른다. 그래서 한달 살기를 하려면 대략 얼마가 필요할까? 결론이 없으니 더 궁금한건 어쩔 수 없다. 한 달 살기 숙소는 가성비 좋은 곳에서 지내신 것 같은데, 대략이라도 계획했던 예산과 집행한 금액이 있을테니 소개해주셨다면 더 좋았을껄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책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일몰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제주의 한맺힌 역사를 표현한 것에 더 가까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