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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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김준기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이 책은 영화 속에 나온 상처와 이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의 상처가 어떻게 생성~치유 되는지를 설명한다이 책에선 다양한 영화들을 예로 드는데 만약 영화가 아닌 소설을 예로 든다면 아마도 김연수의 신작 <원더보이보다 어울리는 책을 찾긴 힘들 것이다김연수의 신작소설 <원더보이>는 상처의 생성~치유의 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책인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상처는 낯설고 치유는 고독하다>

나는 웬만해선 성장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이는 판에 박힌 듯 전개되는 줄거리와 항상 마지막엔 모든 걸 알게 되었다는 듯 자조하는 주인공의 행보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성장소설 속 주인공들이 정말 성장을 한 것인지 현실에 체념하게 된 것인지 조차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20대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의 나조차도 어려운 인생을 성장소설 속 10대들은 너무도 쉽게 확신하며 끝맺음을 한다그래서 나는 여태까지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성장소설을 웬만해선 읽지 않았다그래서 사실이번 김연수의 신작 <원더보이>를 읽게 된 것은 약간의 정보의 부재가 불러온 큰 행운이었다나는 <원더보이>가 성장소설 형식을 취하는지 전혀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아마도 김연수라는 이름이 주는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에 무조건 사서 읽게 된 것 같다그런데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나는 소설 <원더보이>가 성장 소설이란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이는 아마도 이 소설이 다루는 상처와 치유가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소설 <원더보이>의 성장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이 아닌 인간이 성숙함으로 한 단계에 나아간다는 의미의 성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이 성장은 새로운 상처로 받는 고통이 조금씩 무뎌지는생의 끝까지 계속되는 성장인 것이다실제로 이제 아이라 부르기 어색한 지금의 나 역시 새로 받는 상처는 낯설고 그 치유는 너무나 고독하다. (나는 지금도 성장 중인 것이다)

 

106,500,000,000명의 지구를 거쳐 간 사람들 모두가 제각각의 이유로 상처를 받고 치유하는 과정을 거쳐 갔겠지만 이들이 상처를 받는 과정이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인류의 시작과 현재까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그건 호모사피엔스인 우리가 가진 하나의 특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 맥을 같이 한다상처받은 106,500,000,000명의 지독하게 고독하고 외로웠을 상처의 치유 과정에 공감하며 김연수의 신작 <원더보이>를 하나씩 뜯어보자.

 

<정훈의 불행과 상처>

김연수의 소설 <원더보이속 개인’ ‘정훈은 너무나 불행하다그는 태어나 한 번도 자신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으며 아버지와 함께 탄 자동차 사고로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마저도 잃고 말았다그러나 사고 후 얻게 된 정훈의 또 다른 이름인 원더보이는 행복해야 한다. ‘원더보이는 행복하다라는 단순 명제가 아닌 원더보이는 행복해야 한다.’ 라는 당위의 명제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

 

군은 이제 고아가 됐다고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웃으면 이제 세상이 군과 함께 웃겠지만울면 군 혼자 울 것이다군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이 세상과 더불어 웃든지아니면 혼자 울든지.” <p.28 권대령의 말 >

 

아버지를 잃는 사고 후 정훈에게 부여된 기회는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원더보이로서의 역할 뿐이었다개인의 불행이 사회의 즐거움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수형희선의 불행과 상처>

여기 또 다른 유형의 상처를 가진 수형과 희선’ 이 있다이들의 상처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폭력과 개인 간의 갈등 속에서 야기된 상처이다. ‘수형은 1974년 기억의 서울로 대변되는 상처를 안고 산다천재적인 암기능력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수형은 의도치 않게 외우게 된 아버지의 비밀로 인해 정보부로 불려가 곤욕을 치른다그는 정보부에서 자신이 외운 정보를 들려주고 풀려난다그러나 이는 수형의 아버지를 자살로 내몰았고 수형’ 역시 자신의 기억을 파괴해가며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이런 수형을 사랑한 희선은 그가 지운 1974년의 기억을 1980년의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해 그를 구제하려 한다그러나 또 다시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은 1980년 수형을 광주의 학살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그를 영영 데려가 버린다. ‘수형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의 치유자 역할을 했던 희선은 이제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 역할이 변모하게 된다이렇게 상처받은 희선에게 주어진 현실은 상처를 치유할 어떤 상황이 아닌 1980년대의 서슬 퍼런 독재와 억압이었다사회는 역시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만 할 뿐 어떤 상처의 치유책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형희선정훈의 상처는 어떤 식으로 서로와 연결 되는 것일까어째서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 이들이 받은 상처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훈수형의 특별한 재능으로 인한 상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정훈과 수형희선은 모두 같은 듯 다른 상처를 안고 산다우선 정훈과 수형은 모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정훈은 사고 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수형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암기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 두 사람이 가진 초능력적인 재능은 모두 그들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온다정훈은 그의 능력을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범인 심문 기능에 사용하게 되었고 수형의 암기력 역시 반체제 인사를 검거하는데 큰 공을 세우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이로 말미암아 이 둘은 모두 상처를 받게 된다이 둘의 상처는 특별한 재능으로 인한 상처이다.

 

<정훈희선의 부재로 인한 상처>

그렇다면 정훈과 희선의 상처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이 둘의 상처는 부재로 인한 상처이다정훈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를 본 적이 없다그나마 아빠의 존재로 인해 겉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자동차 사고로 아빠를 잃으며 고아가 된 현실 속에서 터져 나온다그래서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아빠의 수첩을 사용하기도 한다희선의 상처는 수형의 부재로 인한 상처이다그가 구제하려 했던 수형은 1980년의 광주의 기억과 함께 영영 그녀를 떠나갔다더 이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형으로 인한 상처를 그녀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듯 같은 정훈=수형=희선의 상처와 극복>

결국 이들의 상처는 모두 외부로부터 입은 상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회내의 어디에서도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다결국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본인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거나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두 가지 밖에 없다소설 <원더보이>의 주인공들은 이 두 가지 선택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상처를 치유한다실제로 수형이 1974년의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모두 파괴하는 과정을 본인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본다면 희선이 수형에게 1980년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수형의 죽음이후 희선은 강토라는 남자 이름을 쓰고 남자행색을 하고 다니면서 여성으로서 일종의 금기와 같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분신을 생각한다이 모습에선 다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그러나 그녀가 다시 정훈을 만났을 때 던지는 말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다시 시작되려함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네가 온 거야난 닮은 사람들은 그 어디에 있든 지구와 달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믿거든우리는 꽤 닮았으니까.”

별로 안 닮았다면앞으로 닮아가겠지적어도 난 널 간절히 원하니까.” <p.136 희선의 말 >

 

결국, <원더보이속 주인공들은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이는 현대 과학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간이 상처(트라우마)를 겪게 되었을 때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정한 성장은 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

내가 잘 읽지 않는 <성장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간 것은 아마도 소설 속 등장인물인 아이(정훈)과 어른(희선)이 어릴 적 내 모습에서 지금 20대 중반을 넘어버린 내 모습 모두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소설 속 정훈과 희선의 상처는 모두 철저히 외부 발생적인 요인으로 입은 상처이다그러나 이들을 상처 입힌 사회와 개인은 이들을 치료하지 않는다오히려 이들이 가진 마지막 하나까지도 사회나 힘 있는 개인을 위해 사용하기를 강요한다상처 입은 개인을 치유할 공간이 사회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결국 이들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거나 상처 입은 자들끼리 서로를 보듬을 수밖에 없다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고독하며 외롭다.

 

잠에서 덜 깬 나는 엄마를 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그건 희선씨였다스웨터가 얼굴에 꺼끌 거렸다그렇게 품에 안겨서 나는 울었다그건 아빠의 유산이 아닌온전한 나만의 눈물이었다누군가 다른 사람의 심장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울어본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아마도 십칠 년 만의 일이 아닌가 싶었다.” <P.301 정훈의 말 >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나의 경험과 비교해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아니오히려 소설이 현실을 너무도 정확히 반영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써 놓아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이다물론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나 이들이 상처를 입고 치유해가는 과정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 할 것이다결국우리는 외부로부터 입은 상처마저도 철저히 개인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게끔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홀로 힘겹게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소설 <원더보이>를 덮으며 과연 무엇이 성장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원치 않는 상처를 입고도 홀로 고독하게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성장인지또 그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처럼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상처의 치유가 아닌 망각을 성장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그러나 <원더보이>의 정훈과 희선의 행동을 다시 반추하며 그들의 성장은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희선이 처음 본 정훈을 보며 자신과 닮았다고 한다거나 정훈이 희선에게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 일련의 과정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그래서 소설 <원더보이>는 지독하게 고독하면서도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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