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 - 건축을 넘어서 현대 예술의 거장
폴 골드버거 지음, 강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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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를 아시는가? 사실 나는 몰랐다. 그렇다면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사실 나는 또 몰랐다. 하지만 몇 가지 건축물만 검색해 보아도 건축이나 미술, 예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도 프랭크 게리가 대단한 건축가라는 느낌만은 확실히 받을 것이다. 《프랭크 게리, 건축을 넘어서》를 받아들고 인터넷에 저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아보았는데 정말 재미났다. 매끈하면서도 투박하고, 장난스럽고 거칠지만 그렇다고 경박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지금 이미지를 검색해 보아도, 또 보아도 분명 어떤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데 이것은 ‘건물’에 대한 내 익숙함과 맞물려 있는 데서 오는 것일 거다. ‘왜 몰랐어?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마 이런 질문과 함께 많은 이들이 프랭크 게리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을 넘어서》에는 칼라 인쇄되어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 사람은 뭘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체 왜 이런 건물들을 지은 것이지? 어떻게 이런 건물이 가능한 것이지? 《건축을 넘어서》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리를 게리이게 한 토대에는 그의 가족력(유대인 배경 등), 나고 자란 도시들, 만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로 인한 그의 좌파적 성향 또한 저자가 중요하게 보고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위대해진 데에는 역시 그의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독특한 방식이 있는 것 아닐까. 내게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그의 탐구 여정이었다. 

그가 여행하고, 끊임없이 도시의 건축물을 관찰하며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발견해간다. 아마 이런 모색의 과정이 없었다면 어마무시한 자본, 클라이언트의 요구들, 도시의 분위기가 싸우는 한복판에서 자신만의 건물을 뚝심있게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게리의 평범한 사물을 향한 관심은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로스앤젤레스와 오렌지 카운티 지역에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규격형 주택을 관찰했다. 게리는 시공 초기 단계에 투바이포 공법으로 세워진 목조 구조가 퍽 예뻐 보였다. 건물의 형태는 뼈대로 완성되지만, 전체 시공 과정을 놓고 보자면 뼈대는 중간 과정에 불과한데, 게리의 눈에는 완공된 결과물보다 뼈대가 더 나아 보였다. 완성된 주택의 실루엣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저 텅 빈 구조물일 뿐인 뼈대의 모호함은 게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리는 스티브스 하우스 작업 도중, 미완성 규격형 주택에 관한 관심이 단순히 유별난 관찰을 넘어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더 흥미롭게 활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련된 목재로 덮이기 전의 주택에도 일종의 아름다움이 스미어 있어요. 만듦새랑 상관없이요. 한번은 꽈서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술가들은 ‘완벽함’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도, 당연한 기준도 아니고, 사실은 억지로 꾸며 낸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러자 모든 것을 그저 내버려 둔다는 생각이 건축하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으로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슨 짓을 해도 그 완벽함에 다다를 수 없으니까요. 애초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그저 몸을 맡기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지금도 제 작품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192쪽)



게리의 건축에 대한 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규격화되지 않은 형태일 것이다. 또 책을 읽다보면 세련되지 않은 것 - 완벽한 만듦새를 갖추지 않은 것을 선호하는 성향을 만나게 된다. 유명한 게리 하우스 또한 어찌 보면 “으잉?” 싶을 정도인데 어떤 점에서냐면 ‘매끈’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해 보일 정도로 ‘빈틈’이 많아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성된 건물의 형태에서 뿐만 아니라 재료에 있어서도 게리는 일상적이며 어쩌면 당시에 건축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던 비주류의 재료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동시에 게리의 건축물에 첨단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게리는 항공 산업을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 기술을 자신의 건축물을 설계하는데 도입하는데 그 덕에 적은 비용으로도 그가 원하는 다양하고 유려한 시도들이 가능해졌다. 

게리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무시하며 제멋대로인 예술가라는 식의 비판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저런 비판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지 알 수 있다. 허공에 뜬 상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나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며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율해 나가고, 주어진 비용에 맞춰 다양한 재료를 시도 하는 모습들 - 이 점이 오히려 예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리는 세속적으로도(^^;) 성공한 예술가로 정말로 많은 건물을 남겼다. 청담의 루이뷔똥 역시 게리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프랭크 게리, 건축을 넘어서》는 게리 건축의 여러 가지 토대를 경험하며, 그의 건축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멋진 책이다. 여러 페이지에 감추어진 멋진 장면들 -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의 드라마를 포함해 -을 잘 전하지 못해 아쉽다. 게리 시대의 미국, 유럽 이곳 저곳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큰 재미. 두꺼운 책일수록, 나와 영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책일수록,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것이 하나의 기술 아닌가. 많은 독자들이 프랭크 게리와 만나게 되기를.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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