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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먹고 싶었는데 100평 텃밭이 생겼다
김효원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평점 :

시멘트 바닥에서 비석치기를 하며 자란 내게 농사나 텃밭은 ‘언젠가’라는 아련하고 목가적인 상상에나 등장하는 로망이었다. 장작 때는 시골 할머니집도 없고, 대학시절 농활을 가본 적도 없으니, 그 로망에는 땡볕도 흙먼지도 온갖 날고 기어다니는 벌레도 없었다.
‘놀고먹고 싶었는데 100평 텃밭이 생겼다’에는 나처럼 별 생각없이 시골살이를 생각했던 5도2촌러의 파란만장한 농촌 어드벤처가 담겨있다. 8살 때 상경해 쭉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닌 저자는 강원도 영월 고향에 내려가 농사꾼 아버지가 남겨둔 땅을 일구기 시작한다. 어깨너머 아버지가 농사짓는 걸 보긴 했지만 쌩초보 농부에게 땅을 다루는 일은 환장 특급이다.
어떤 날은 “나 완전 농사에 재능이 있는 건가”라며 환호작약하지만, 여지없이 태양, 비, 바람 등 자연의 대찬 변수 앞에 속수무책 백기를 든다. 저자와 함께 일희일비하며 배꼽을 빼다 보면 왜 그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가의 대목에 이른다.
저자는 3년 전 가을 돌연 아버지를 잃었다. 농꾼 아버지는 강 건너 밭으로 매일 오가던 보를 건너다 실종됐다. 낡은 자전거만 남겨둔 채 사라졌던 아버지는 반나절 만에 하류에서 발견됐다. 아무런 전조도 없고, 예상도 할 수 없던 황망한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뒤 처치곤란 시골 땅이 덩그러니 남았다. 아버지의 유품같은 땅을 그냥 팔 수 없어 저자는 농사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매일 써둔 일기가 농사 가이드북이 되었다. 아버지의 시간표를 따라 춥고 겨울이 긴 영월 농사를 더듬더듬 시작한다.
상추, 케일, 고추, 땅두릅, 콩, 팥, 열무, 참깨, 딸기 등등 온갖 것을 심지만, 주2회 농부에게 농사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애써 심은 모종은 싹이 나는 족족 반은 벌레에게, 반은 고라니에게 털려서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초주금’ ‘풀다이’ 등 무림고수같은 이름을 가진 농약과 각종 퇴비, 그리고 조금씩 느는 요령을 발판으로 그는 ‘3년차’ 농사꾼이 되는 중이다.
그의 아버지가 남긴 수첩에는 먼 밭을 바라보며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간 아버지의 표정과 마음이 담겨있다.
‘내맞밭을 가서 들깨 옥수수 콩 메밀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라는 것을 보면 나의 마음은 행복하다. 풀 한 포기라도 뽑고 싶어진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며 율무에 비료를 주고, 영준이가 와서 같이 있었다. 그러다 오후 8시에 올라갔다. 그래서 쓸쓸했다.’

유서도 유언도 없이 떠난 아버지가 그곳에서 보냈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내면서 저자는 아버지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밭에서 보낸 시간이 농사꾼의 딸로서 아버지를 애도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보는 시간을 통과한 끝에 비로소 아버지를 보낸 저자는 오늘도 도시와 텃밭을 오가며 고군분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