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신 날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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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이 누군가에게 조근조근 자신의 일상을 전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재를 배경으로 한 것도, 현재 청년층인 8-90년대생들이 60대가 된 후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도 있다. 담담하게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이 멋졌고, 타인에게 혹은 세계에게 휘둘려가면서도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 나 자신을 잘 붙잡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좋았다.





첫 번째 단편 <뿔>은 행운도 불운도 우연의 결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주인공의 의연함이 인상적이었다. <아티스트>는 꿈인 듯 현실인 듯 그림 속 모델이 된 한 남자와 마법 같은 휴일을 보내고, 그 기억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는 직장인 선아 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주의 휴식>에서도 그림을 드나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렇게 줄거리나 사건만 간략하게 쓰니 장르가 판타지인가 싶을 정도이긴 한데, 주인공은 너무나도 흔한 현실의 인물들이라는 게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주인공은 <옳고 편안하게>의 주인공 가은이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믿고, 휘둘리고, 상처받고, 자책하고, 위로받고, 극복하는 모든 과정이 짧은 한편의 이야기에 야무지게 들어있다. 어이없는 실연 이후 어두운 얼굴로 떠났던 여행에서 우연히 인생철학자와의 만남을 갖게 된 가은의 이야기는 얼마 전 읽은 자기계발서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가은의 이름 뜻대로 그녀는 스스로 옳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격려가 나에게도 와닿았다. 누군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이별을 수긍하며 '난 나대로 살 거야'라는 말을 하는 가은이 쪼금 멋졌다. 상처를 극복해낸 사람이 가진 아우라라는 게 생겼다고 할까. 그 극복이 한순간에 되는 것은 아니기에 당장은 앙금은 남을지 몰라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멋지다.

<내가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은 단편'헤비메탈을 듣는 방법'의 번외 편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본편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번외 편이었다. 김혜정 작가님의 팬이라면 반가운 선물같은 단편이 아니었을까 싶다. 각 단편들의 모든 줄거리를 소개할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이끌어내는 문체도 좋았고 조금은 뻔하더라도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등장인물에 이입하고 함께 응원하며 담담하게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좋았다.


살아가며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을 테고 분명 지치는 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오고 가는 행운과 불행을(혹은 불편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설들. 과거와 현재의 날들을 미래의 언젠가에는 꼭 '눈이 부신 날'로 기억할 수 있기를 응원해 주는 그런 소설들이 담긴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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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냥! 일하는 야옹 형제 - 고양이들의 말랑한 하루
주노 지음, 노경실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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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일을 하는 야옹 형제의 하루 일과를 쭉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사실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뭐 별다를 게 있는 내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주인공인 형제는 바로 고양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고양이 세계이다. 표지에서 빵긋 웃으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 갈색 줄무늬가 형, 빨간 넥타이를 하고 얌전히 검정 가방을 붙잡고 있는 처진 귀에 회색 반점이 동생. 평범한 일상인데 주인공들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다 보니 그냥 장면 하나하나가 귀엽다. 부제가 '고양이들의 말랑한 하루'라고 쓰여있는데, 쓱쓱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읽는 사람의 마음과 표정이 말랑해지는 책이었다.



함께 사는 형제는 매일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이 잠을 잔다.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해 일도 하고, 일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퇴근길엔 함께 마트에서 장도 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과 똑같은데, 온오프 확실한 여느 직장인처럼 집에 들어가 발을 닦는 모습이나 함께 엉켜서 장난치고 잠자는 모습은 너무 그냥 고양이라 피식피식 웃게 된다. 형제의 성격차이가 일상에서도 꽤 드러나는데 형은 야무지고 부지런한데 동생은 느긋하고 어리광쟁이인 게 잘 어울리고 각자의 매력이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 스토리는 평화롭고 잔잔하지만 호불호 없을 정도로 귀여운 그림체의 매력 가득한 주인공이 있는 그림책, 올 컬러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더 좋았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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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AI 국내 최초 10가지 인공지능 그림 그리기 - 달리2 / 미드저니 /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 레오나르도 / 플레이그라운드 / 비 디스커버 / 어도비 파이어 플라이 / 뤼튼 / 포킷 / 캔바 크리에이터 시리즈 5
최경희.허기도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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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비롯한 AI 기술이 일상 곳곳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창작예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은 아직도 갑론을박이 치열한 편인데, 미국의 한 미술대회에서 제이슨 앨런이 미드저니로 만든 작품을 디지털 아트 부문에 제출해 1등 상을 수상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년에 이 뉴스를 접하고 AI로 그려내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그림을 그려내는지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온전한 예술 작품뿐 아니라 웹툰이나 일러스트의 배경 등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술이 점차 발달하고 대중에게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실제로도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입맛에 맞게 활용하는 범위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1장에서 챗GPT의 이해와 사용법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후, 2장부터 11장까지 챗GPT기반의 인공지능 그림 그리기 기능을 제공하는 10가지 프로그램을 각 장에 하나씩 알려준다. 각 장에서는 그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나 창업자에 대한 이력, 프로그램 소개(가입 방식과 요금제, 메인화면 구성, 주요 기능 등)가 이어진다. 프로그램의 메인화면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주기 때문에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친절한 설명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각 프로그램은 그림 그리기 외에도 다양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림 생성 기능을 중점적으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편이다. 그림 생성 기능에 대해 설명할 때는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 그려낸 그림들을 예시로 보여주기도 한다.




일부 혹은 전체 기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꽤 많았고, 챗봇을 이용한 사용법도 간단하니 책을 보고 바로 따라 해보기도 좋았다. 나도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 프로그램 (달리2/미드저니/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레오나르도/플레이그라운드/비 디스커버/어도비 파이어플라이/뤼튼/포킷/캔바)중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한국최적화'라고 소개된 '뤼튼'을 책을 참고해 직접 사용해 봤다.(위에 첨부사진 참고) 


명령어 혹은 명령어와 기본 이미지를 사용해 그림을 생성하는 방식은 똑같은데 명령어를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제시할수록 결과물이 달라지는 게 보여 신기했고, 같은 명령어를 반복했을 때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가 나거나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나를 사용해 보니 다른 프로그램들도 더 궁금해졌다. 다양한 인공지능 그림 프로그램이 궁금한 사람, 직접 사용해 보고 싶은 사람, 잘은 몰라도 챗 GPT가 궁금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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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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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 그 해 홍주는 열일곱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비행기에 신기해하며 큰소리로 인사까지 건넸지만, 그 비행기는 홍주의 집이 있는 마을을 공격해 엄마와 동생 동주의 목숨을 앗아갔다. 말로만 듣던 전쟁이란 것을 실제로 목격하고 가족을 잃은 홍주는 '죽기 위해' 여군에 지원하고 소녀 첩보원 래빗이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켈로부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소녀이자 '독한 년'이 되어 부대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몇 번이고 임무수행에 나선다.



소녀 첩보원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맨몸으로 사지에 나서 오로지 머릿속에만 정보를 담고 돌아온다.(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면 자결한다) 부대에 귀환한 후에도 첩보 과정 중의 변절을 의심받고 심문 과정을 거쳐야만 휴식이 가능했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거쳐가며 홍주는 꾸준히 살아남았다. 홍주가 처음 맞닥뜨린 전쟁의 모습에서 '죽음이 쉬웠다'라고 느낄 만큼 전쟁은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켰다. 홍주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첩보활동을 하며, 살아남으며 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그들의 수를 캐비닛에 바를 정자로 기록해두기도 한다.


또 다른 래빗 유경의 이야기도 나온다. 유경은 배우였고 위문공연을 다녀오면 주연을 시켜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부대에 왔다가 래빗이 되었다. 래빗이 된 이후에도 유경은 여전히 배우를 꿈꾼다. 당차고 유쾌한 유경과 조심성 많은 홍주의 만남과 우정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을 수행하며 이루어진다. 두 사람의 임무는 무사히 끝이 날지, 전쟁이 끝이 난 후에 수많은 래빗들은 어떻게 될지 마음 졸이며 읽어갔다. ​



전쟁 중에 의심받지 않고 정보를 캐올 수 있는 소녀 첩보원, 여군과 여성 의용군 등 이 책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 혹은 저마다의 이유로 전쟁에 뛰어든 여성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런 존재들은 소녀 첩보원이 활약한 켈로부대의 '래빗'작전을 포함해 기록이 남아있는 실제의 이야기라고 한다. 대부분의 군인이 남성인 건 맞지만, 여군 역시 존재했다. 직접 전쟁터에 나가 총을 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여성들 역시 있었다. 하지만 기록은 미미했고 그 미미한 기록조차 주목하지 않았던 게 우리 사회의 시선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그 이야기들도 점점 더 드러나고 관심을 받는 사회와 시대가 되었고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흰토끼는 홍주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준 산신님이었을까, 아니면 래빗으로 활동하게 될 홍주의 미래를 예견한 불운의 증표였을까. 책을 덮고 나니 맨 첫 장면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진행될 이야기를 쉬이 예상할 수 없어 더욱 흥미진진했던, 능수능란한 문체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며 있을 수 있었던 소설.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던 소재와 존재들을 만날 수 있어 뜻깊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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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시간 PNSO 어린이 백과사전
양양 지음, 자오촹 그림, 이승헌 옮김, 마크 A. 노렐 감수 / 바수데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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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SO 어린이 백과사전 시리즈 <공룡의 시간>, <선사시대의 바다 괴물들>, <익룡의 비상> 세 권 중, <공룡의 시간>을 리뷰해 본다. 일단 표지에 그려진 머리털 있는 티라노가 반갑고, 표지만 봐도 커다란 책을 가득 채우고 있을 공룡 그림의 퀄리티가 기대됐다. 책의 구성 및 순서는 용반목과 조반목으로 크게 구분해 모아두었고, 화석 발굴지역과 공룡들의 생존 시기를 먼저 보여준 후 순서에 따라 그림과 본문이 이어진다.


[ TIP. 용반목, 조반목에 대한 설명은 책에 따로 나와 있지 않은데, 공룡을 분류할 때 골격구조에 따라 구분하는 명칭이다. 엉덩이뼈(골반뼈)의 구조가 오늘날 도마뱀의 모양이면 용반목, 새의 모양과 비슷하면 조반목으로 구분한다. ]


공룡의 종류 별로 생생한 그림과 친근하게 공룡의 정보를 전해주는 본문 글이 각자 매력을 뽐내는 백과사전이다.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공룡 책들에는 삽화가 캐릭터처럼 단순화되거나 특징을 살린 귀여운 버전으로 실리는 경우가 흔한데, 이 책의 공룡들은 몸 곳곳의 디테일은 물론 배경 하나하나까지 정말 생생하다. 동식물 백과사전의 경우에도 세밀화가 수록된 버전을 많이 보긴 했는데, 이제는 보고 그릴 대상도 없는 '공룡'까지 이런 퀄리티의 일러스트로 접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그림 속 공룡들은 평범한 백과사전용 그림처럼 반듯이 서있거나 어딘가로 이동 중인 모습도 보이지만, 사냥 중(화려한 날아 차기 장면도 있었다ㅋ)이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주변을 탐색하고 경계하거나, 적에게 둘러싸이거나 휴식 중인 모습도 있다. 다양한 상황과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장면으로 만나는 공룡들의 모습은 화려하기도 하고, 이 책에 푹 빠지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다.




공룡의 이름 앞에 간단한 소개 글(소제목?)과 본문은 그림 속 공룡에 대한 정보를 쉽게 알려준다. 습성이나 외적인 특징, 즐겨먹는 음식, 또는 화석이나 이름에 관련된 일화도 소개한다. 이름에 관련된 일화 중에는 아이들의 투표로 결정된 '드라코렉스 호그와트시아'와 '아름다운 화석'이라는 뜻의 '사이카니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새나 도마뱀의 시조가 공룡이라는 건 비교적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룡들의 구석구석을 볼수록 도마뱀의 발톱이나 새의 부리처럼 닮은 곳들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유독 새와 닮은 공룡들이 신기했다(털이나 깃털을 가진 공룡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도). 4개의 날개를 가진 '미크로랍토르'나 생각에 잠긴 듯한 '벨로키랍토르'의 아름다운 삽화를 아무런 설명글 없이 보면 과연 이게 공룡의 그림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까?


공룡은 이미 멸종했고, 우리는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영화 '쥬쥬라기공원' 팬들을 비롯해, 공룡과 고생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기를 그 대상의 이름을 가져와 "00기"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는데, "공룡기"를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나처럼 뒤늦게 공룡기에 들어선 사람도 물론 있을 테고) 화려하고 정교한 그림과 흥미진진한 글로 공룡기의 문을 열어주고 싶다면, 혹은 이미 공룡기에 빠져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공룡의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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