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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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 은(=영친왕)과 그의 아들 이 구의 이야기. 허울만 남았지만 평생을 그에 얽매이고 휘둘려 살아야 했던 마지막 황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1장에서는 이 은과 마사코의 결혼생활을, 2장에서는 첫아이를 잃고 남편을 보필하며 구를 낳아 기르는 과정을 마사코의 시선에서, 3장에서는 구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이 구의 이야기는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책의 시작은 사실 이 구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론 부제에 붙인 '비사(悲事)'가 어울릴법한 시작이라 느꼈다. 그리고 영혼이 된 그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저 그 시공간을 끌어오기만 하는 장면도, 직접적으로 서술하며 감상하는 장면도 있다.



​이 은과 마사코는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거나 원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으나 살아가며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쌓여 애틋한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감정과 다독임으로 평생을 돈독하게 살아가기에 힘겨웠던 건 온전한 황족으로도, 온전한 범인으로서의 삶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 은은 여러 작위와 호칭으로 불려왔다. 영친왕, 영왕, 이왕세자, 이왕, 일본의 백작 등등. 일본에 입맛에 맞게 황태자로 책봉되어 일본으로 끌려갔고, 역사 속 그의 삶은 다소 무기력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자신과 조국의 처지를 모를 수 없었던 그의 속은 과연 무기력하기만 하였을까?


이 은의 이야기에서는 마사코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던 장면들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국적을 잃었을 시절, 한 나라의 황태자라는 신분으로는 해외에 나갈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의 백작 신분으로 길을 떠나 여러모로 이용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은밀하게 수첩에 담아온 것, 그리고 그 이상으로 눈과 마음에 담아온 것이 있었다. 어떤 나라를 돌아볼 때 가장 보고 싶은 것과 알고 있는 배경지식 또한 이 은과 마사코의 입장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지킬 수 없는 것은 조국만이 아니었다. 아카사카 저택은 지켜낼 수 없었던 집이었다. '사라진 집'이었다. '잃어버린 집'이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일을 꿈꾸던 이 은은 있는 집도 지키지 못하는 허약하고 힘없는 평민일 뿐이었다.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린 집은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  (본문 중 204p)


나라가 해방이 되고 양쪽의 나라에서 모두 황족의 지위를 잃었어도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되진 못했다. 한국으로 귀국도 어려운 일이었고 황족으로의 재산을 몰수당한 후 생활비를 지급받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결국 가족과의 기억을 쌓아온 아카사카의 저택마저 헐값에 팔게 되며, 지키지 못한 것은 고국뿐이 아니었다는 허망함에 슬퍼하는 이 은의 속마음이 아마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 제목의 의미도 떠올릴 수 있는 이 구절을 지난 후 이 은은 꺾여버린 가지처럼 시들어져가는 것 같다.



박정 정부 때에 들어서야 겨우 한국 국적을 받아 귀국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계획해둔 장애인복지사업을 시작한다. ​이 은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 뜻을 이어 마사코가 전면에 나서 사업을 지속해나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이 은의 부인이나 황태자비로 대우받지 못하고 적통에 걸맞지 않은 쪽바리 여자라는 비난 어린 시선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의 아들 이 구 역시 황태손 혹은 왕세자로서의 대우는 받지 못한 채 책임과 부담은 잔뜩 짊어져야 했다.


국권침탈, 대한제국 선언, 헤이그 특사 사건, 고종의 서거와 3.1운동, 길었던 식민 지배와 급변했던 세계정세, 그리고 광복과 그 이후로도 결코 평안하지 못했던 조국의 격변기를 고스란히 겪은 이들 중 과연 무난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던 이는 얼마나 될까. 이 은과 그의 가족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우리에게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이름은 그래도 익숙한 편이고, 그 외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그들의 생을 훑어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소설을 읽는 건 왜일까. 작가는 '역사 소설은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허구'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빌려온다. 역사 속 화려한 영웅적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구체적인 장면들과 대사들은 그에 대한 생각과 상상을 한층 더 확장시켜준다. 그들은 역사를 살아낸 실제 인물이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고뇌와 속내를 상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나라가 해방되고 왕조가 끝을 맺은 이후 살아있는 왕족들은 과연 평범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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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어원을 만화로 잡는 4컷 영단어
히지이 가쿠 지음 / 더북에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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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만화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호감 가는 책이었고, 공부라는 생각보다는 만화를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다 보니 중고등학교 때 단어 공부하던 기록이 새록새록 났다. 그때도 (어원이라는 생각은 못 했더라도) 여러 단어 중 비슷하거나 겹치는 스펠링이 있는 단어끼리 묶어 공부를 했던 것 같다. 



필수 어원을 알면 여러 파생 단어들의 의미를 더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기에 매우 유용하다. 어원만을 한데 모아 별도로 암기하는 것은 지루하고 어려울지 몰라도, 필수 어원을 사용한 단어들끼리 짝을 지어 같이 공부하면 단어와 함께 그 어원도 쉽게 파악하고 외울 수 있다. 거기에 단어 공부도 단순 암기가 아니라 만화라 더욱 재밌다. 그림 속 캐릭터나 이야기는 조금 헐렁하고 단순하긴 해도, 그림으로 스토리를 가미해 공부하는 방법은 그 내용에 대해서도 더 쉽게 접근하고 더 쉽게 각인시켜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챕터는 총 6가지로 구성되었는데, 단어의 뿌리/머리/꼬리라는 표현으로 어근, 접두사, 접미사로 쓰인 어원들을 각자 다루고 단어를, 세 개/두 개/한 개의 세트를 구분해 놓은 세 파트가 더 있다. 목차의 표현부터도 딱딱하고 이론적인 게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로 말랑하게 표현된 점이 마음에 든다. 단순하고 유쾌한 네 컷 만화로 풀이된 어원의 스토리를 읽어가며 이 책을 완독하면 총 333개의 단어를 학습하게 된다. 기본 어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이들, 한동안 놓아두었던 영어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는 어른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어 어휘 교재가 되어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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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피베리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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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일을 그만두고, 하와이로 3개월의 휴가를 떠나온 기자키 준페이다. 평소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 스기시타의 권유로 하와이행을 결정한다. 그중에도 힐로라는 섬을 목적지로 정하게 된 이유에는 친구에게 들은 듣게 된 조금 독특한 '호텔 피베리'의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 


호텔 피베리는 오너가 정한 원칙에 따라 처음 방문한 손님만 예약 가능한 곳이다. 원래 가즈미와 요스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기자키가 피베리를 찾았을 땐 남편 요스케가 새로이 카페를 차려 호텔 운영은 가즈미가 혼자 도맡아 하고 있었다. 기자키의 옆방을 쓰는 별 사진을 찍는 남자 아오야기, 장기 투숙객 가모우와 뻔뻔하고 넉살이 좋은 활자 중독자 사키모리, 그리고 가자키와 같은 날 체크인을 한 유일한 여성 투숙객 구와시마까지 총 5명의 손님이 호텔 피베리에서 만난다. 



처음에는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보내는 하루하루에 잠시 만족하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하와이의 섬에서도 그는 지난 과거에 얽힌 불안과 누구도 메워주지 못할 고독을 느낀다. 호텔의 손님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가벼운 대화와 만남을 갖는데 정작 가자키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가모우가 호텔 풀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는 일이 생기고, 그가 남긴 이름과 연락처 모두가 거짓인 게 밝혀진다. 그 후 가자키는 이 호텔의 손님과 자신은 모두 비슷하다는걸, 가벼운 관광이나 즐거운 휴가를 보내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각자의 불안을 가지고 그저 멀리 도피해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가모우의 실제 정체가 밝혀지기도 전 옆방에 머물던 아오야기까지 사망하게 되는데...



초반에는 주인공의 불안이 전염된 것처럼 조금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사연이 짐작이 가기도 하고 자기 합리화하는 듯한 서술에 공감도 가지 않아서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각자의 사연은 무엇인지, 연이어 발생한 호텔 손님의 사망사건은 단순한 사고일 뿐인지, 범인이 있다면 누구이며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다양하게 상상해 보게 만든 후 후반부로 갈수록 진행이 빨라져 순식간에 읽은 것 같다. 선량하고 매력적인 주인공을 바란다면 추천하기 어렵지만, 여름밤에 어울리는 어쩐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분위기의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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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고양이 - 당신의 고양이가 하고 싶은 말 연애보다
앨리슨 데이비스 지음, 나마스리 니어밈 그림, 김미나 옮김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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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59 things you sould konw about your cat>, 즉 '당신이 알아야 할 당신의 고양이에 대한 59가지'다. 시리즈 같은 강아지 버전 책 <연애보다 강아지>와 동일한 점은 고양이에 대한 문구와 사랑스러운 일러스트가 있다는 것. 차이점은 강아지가 몸으로 전하는 소통법에 집중했던 강아지 버전의 책과 달리 고양이의 습성이나 타고난 특성 등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



목차를 미리 보자면 '치명적인 혓바닥', '세상의 같은 코를 가진 고양이는 없다' 처럼 신체적 특징을 다루기도 하고, '꿈을 이뤄주는 고양이'. '한때 신이었던 고양이'처럼 이야기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 정보도 나온다. 꾹꾹이나 일광욕, 상자를 좋아하는 이유 등 고양이의 행동 습성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는데 백과사전이라기엔 조금 과하니, 얼추 고양이에 관한 잡학사전 같은 느낌이다.


책의 시작에는 '독자의 이해와 유익함을 돕기 위해 옮긴이의 보충 원고를 추가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있는데 본문과는 다른 글씨체와 다른 색(주황색)으로 덧붙은 글이 아마도 그 보충 원고인 것 같다. 색과 글씨체로 차이를 두되 본문과 이어지는 듯한 비슷한 어투의 문장들은 자연스럽고 추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고백하자면 개와 고양이를 모두 좋아하지만, 택 1 하라면 고양이 파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고양이에 대해 이렇게나 모르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히려 문구들은 어디에서 한 번씩 들어본 듯) 개성 있는 고양이들의 특징과 정보를 하나 둘 접해가며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 짤막한 정보 하나에 일러스트 하나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유익함과 귀여움에 절로 웃음이 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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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강아지 - 당신의 개가 하고 싶은 말 연애보다
리즈 마빈 지음, 옐레나 브리크센코바 그림, 김미나 옮김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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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한다. 오직 들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 오르한 파무크   (본문 중 124p)




사랑스럽고 가끔은 한없이 사람에 가깝다고 느끼는 존재이지만 그들이 인간의 말을 못 하고 우리는 개들의 말을 못 하니 어쩌겠는가. 서로에게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피고 서로를 관찰하며 눈빛으로 마음으로 소통하는 수밖에. 이 책은 그런 인간과 강아지의 소통을 조금이나마 돕는 책이고, (사실은 개의 종마다 다르다는) 개들의 공통적인 소통법을 배워볼 수 있는 책이다.


강아지의 눈빛, 귀와 꼬리의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강아지의 어떤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 A는 B라는 식의 명확히 정해진 정답을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의미일 경우가 많으니 이런 점을 더 신경 쓰면 된다는 식의 카운슬링을 해주는 책이다. (본문도 대화를 하는 것처럼 구어체의 존댓말로 쓰여있다.)





귀여운 일러스트와 장난스러운 제목들(꼬리야, 게 섯거라!, 문득 개의 눈빛이 아련해질 때, '땅파개' 본능 등등)이 책을 더 쉽고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다. 중간중간 개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유명 인사들의 개와 관련된 문장들도 만날 수 있다. 개를 키우고 싶지만 개에 대해 잘 모르는 예비 견주들이 꿈을 키우며 읽기에도 좋을 것 같고, 개를 키운지 얼마 안 된 초보 멍집사들이 내 개를 더 이해하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읽어보기에도 좋을 책인 것 같다. 개의 소통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다 멋진 일러스트 때문에 약간의 힐링이 더해져,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끌릴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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