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Up - 초급과 고급 과정의 실전 페미니즘
율리아 코르빅크 지음, 김태옥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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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페미니즘 활동과 목표의 종류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 수만큼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일한 페미니즘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주제도 없어요.(중략) 하지만 페미니즘의 가장 큰 과제는 왜 여전히 페미니즘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이죠.   (142p, Q. 페미니즘에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요? 에 대한 '줄리 자일링어'의 답변 中)​

 

하나의 거대한 페미니즘이란 없다. 페미니즘의 흐름이나 이론에 관해서는 "불일치"라고 표현하는 게 아주 적합하다.  (본문 중 146p)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와 그 이름에 얽힌 역사와 이론 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그런 망설임은 무지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자들조차 그에 대해 위와 같은 답변을 내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고, 할 말은 많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 만큼 책의 구성도 약간은 혼란스럽다. 크게 <01. 기초>와 <02. 동등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굵은 목차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인터뷰(페미니즘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와 프로필, 저자가 작성한 토막토막 이어지는 본문과 다양한 통계자료, '짧고 간결하게'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개념 및 이슈 정리들이 제자리인 척 조금은 어지럽게 섞여있다.  오히려 목차에서 밝히지 않은 본문 내의 8가지 이름의 소 목록이 이 책의 내용이나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더 도움이 된다. 책의 앞부분에서 이런 정리된 목차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이 책의 독자들이 '페미니즘의 미로'에 빠져 마음껏 헤매고 직접 여러 가지 개념이나 편견과 부딪혀 싸워 결국 실전에까지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라는 저자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처음에는 본문과 상관없이(심지어는 문장이 이어지고 있는 본문과 본문 사이에도)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프로필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읽다 보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내용들도 본문과는 상관없는 내용의 통계자료도 하나하나 흥미로워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나를 통째로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개념이나 관련 내용들이 책 안에서 조금씩 나누어져 있어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묘한 힘이 있는 책이었다. 서평을 작성하다 새삼스레 발견한 8가지 목록을 보니 '이런 내용을 읽었구나'하며 마구잡이로 들어온 다양한 정보들을 스스로 다시 점검해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 초급반이라 자칭하는 나에게 모든 내용들이 새로웠지만 26살의 젊은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기획한 톡톡 튀는 구성이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 특히 소 목록 중 <8. 이제 실전으로!>라는 부분에서 제시한 '탁월한 페미니즘 아이디어 열두 가지'는 간결하게 쓰여있지만 독자들이 실제로 시행해볼 법한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운동의 또 다른 이름이고, 남녀의 평등권을 주장하며, 성별에 있어서 (사회, 정치적 의미로) 약자인 여성의 참여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남녀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실제로 그 '평등권'이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여러 가지 성차별을 그리 크게 느끼거나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사회의 갖가지 사건들과 주장을 듣기야 했지만 그저 남의 일인 양 흘려들어버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성차별의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분명히 겪었다는 걸 느꼈다. 알게 모르게 학습해온 여러 가지 편견들이 내 안에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큰 범죄나 커다란 사건으로 번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차별과 편견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은 분명히 사회 운동의 한 종류이지만 사소하게는 주장을 가진 일종의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누구나 평등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내 맘대로 해석해도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만큼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주장과 인식, 그리고 표현 방법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에 사람들은 주저한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그것은 그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페미니즘이 가진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 종종 비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미투 운동으로 신고당할 만한 짓은 하지 마', '미투 운동 조심해라'하는 말들. 단순하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경계하라는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미투 운동을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밝힌 피해자들을 자칫 가해자로 둔갑시켜 누군가의 신세를 망치게 만드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뉘앙스를 풍긴다.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흘려듣는 소리라도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고 싶었다. 미투 운동은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몰시키거나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있어선 안될 일이지만 혹여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미투라는 이름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그로 인해 이러한 인식이 퍼진다는 건 정말 억울한 이야기다. 내가 속으로 답답해만 하던 이런 부분과 관련된 내용을 책에서 찾아냈다. 권력과 관련된 치명적인 성차별에 대한 대응 및 처신에 대한 이야기 도중에 나온 내용이다. 


우리는 종종 비난받는 것처럼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제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피해자 회원권(스위스 TV 진행자 외르크 카헬만이 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 뒤 인터뷰에서 한 말로, 여성들은 항상 희생자 노릇을 하며 남성들을 가해자로 몰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옮긴이)이라는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절규 운동, 경험의 교환, 성차별의 가시화,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은 자의식을 가진 표현방식들이며 필요에 따라서 구체적인 행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본문 중 48p)
      
내가 아는 모든 여성들은 성별 간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평등에 찬성하면서도, 누구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부르지 않는다- 미셸레 로텐   (본문 중 243p) 


누군가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하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아니야, 하지만...' 전술을 사용한다. 일단 부인하고 페미니즘적인 사상을 조심스레 밝히는 것이다. 서평에서는 주로 단순하게 성차별이라는 단어만으로 언급했지만 평등권의 문제에 있어서 페미니즘이 필요한 영역은 상당히 다양하다.  월급과 사회생활(직장의 유무), 몸에 대한 인식(몸매, 제모, 나이 등), 힙합과 영화에서 드러나는 단면들 등등 이 책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어느 사소한 부분이라도 누군가 더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 실전에서도 쓰일 수 있기를 바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므로써 나 역시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자문해본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으음... 아직은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내 안의 주장이 서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떼었으니. 하지만 페미니즘이 누구나 동의하는 '평등'에 대한 바른 인식과 변화를 바라는 태도라면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 답변도 '아니야, 하지만' 전술을 써먹은 것이려나... ?) 일단은 저자가 추천한  '탁월한 페미니즘 아이디어 열두 가지' 중 "정보 얻기"부터 시작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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