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다릴게
스와티 아바스티 지음, 신선해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두가지 이유로 집을 떠난 제이스는 엄마가 전해준 주소만을 따라 몇 년만에 보게될 형의 집앞에 섰다. 반갑게 자신을 환영해줄지, 많이 자란 서로의 모습에 어색해할지, 갑자기 찾아온 자신을 떨더름하게 바라볼지, 아니 그 전에 자신의 형이 이 곳에 살고 있는게 맞는지 초조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선 제이스의 얼굴은 상처투성이다. 그가 집을 떠난 첫번째 이유, 엄마와 자신에게 쏟아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형 크리스천은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다. 판사인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살던 그는 지금 그의 가족과 자동차로 19시간 거리에 있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재회한 두 형제는 서로에게 묻지않는다는 조건으로 낯설고 아슬아슬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집을 떠날 때 급하게 엄마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말은 엄마가 곧 제이스를 따라 집을 나오겠다는 약속이었는데, 제이스는 지속적으로 엄마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있다. 엄마가 오기로 한 추수감사절까지의 날짜를 하나하나 세며 그는 낯선 동네와 새로운 학교생활, 친구들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옆집에 사는 형의 애인 미리엄은 제이스가 전학처리를 밟은 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애인의 숨겨진 과거에 대한 실마리, 난데없이 나타난 애인의 동생이라는 골치아픈 사명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해결해나가려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미리엄과 제이스의 대화가 부분부분 흥미로웠고 미리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가정폭력이라는 문제와 그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이는 커서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쉽다? 어려서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오로지 그 상처에 휘둘리게 된다? 제이스의 시선에서 풀이된 책의 내용을 보아서는 미리엄을 포함한 사건의 전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제이스를 단순히 학대의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고 어딘가 고장났을 가엾은 아이로 바라보는 것 같다. 이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다. 범죄나 악질적인 행동을 한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에게까지 우리는 알게모르게 비슷한 낙인을 찍고 바라보는지 모른다. 동정을 받는 것도 무언가 치료가 필요한 아이라는 시선도 영 불편한데, 심지어 그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우려 드는 미리엄은 제이스의 시선에선 그리 달갑지 않다. 폭력이나 가정학대를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불안정하고 상처입었으리라는 시선은 일반 사람들의 흔한 관점이고, 사실과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상처를 들여다 볼지언정 걱정스런 시선만큼 인생의 전부를 그 사건에 휘둘리며 살아가지 않는다. 적어도 이 책의 주인공인 제이스와 크리스천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축구부 활동을 하며, 일을 구해 일상에 적응하는 한편 제이스는 시시때때로 자신을 덮치는 내면적인 갈등을 겪는다. 일상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작은 짜증에 최악의 상황-혹은 자신이 해낼수 있는 폭력적인 반응들에 대해 마음속으로만 풀어내며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이스가 집을 나오기전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그가 스스로 절대 용서할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런 자신에게 벌을 주기 위해(또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활 곳곳에 제약을 두며 애쓰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여기에서 제이스가 집을 떠난 두번째 이유. 그는 스스로가 가진, 어쩌면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을지 모를 폭력성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고리를 벗어나고자 집을 떠나왔다. 책의 후반부에서야 언급이 되지만 그는 언제 폭발하지 모를 스스로의 분노나 폭력이 무서웠다기 보다는 그로 인해 초래될 '아버지-어머니'같은 굴레를 주변사람에게 씌우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폭력 후에 늘 거짓으로 사과를하고 남탓을 하며 붙잡아두는 아버지나 그에 학대당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악질적인 관계를 자신이 똑같이 재현하게 될까,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이 그 지옥같은 굴레의 피해자가 될까 제이스는 두려워했다. 타고난 성질이나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에게서 알게모르게 배우게된 분노나 폭력성이 내재되어있다고 하더라고 제이스는 참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다. 주변의 사람들과 가족을 사랑할 줄 알고 그 관계를 망치지 않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형 크리스천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준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를 보호하려는 시도, 집을 떠나는 것까지 제이스가 경험한 대부분의 것을 크리스천 역시 경험했고 아주 어려서부터도 터울이 제법있는 형은 자신이 늘 따라다니고 의지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상처를 가진 약자이기도 했다. 얼핏 두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회복해가는 훈훈한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영 불안불안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김이 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오기로 한 그날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빨라지고 두 사람 사이의 진심이 드디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이 책의 주인공인 제이스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내고 형과 함께 상처를 보듬어나간다. 그 과정이나 속마음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과거에 읽었던 가정폭력을 다루었던 몇몇 작품들에 비해 그 폭력의 과정이나  정도에 집중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덕분에 불안정하고 흔들릴지라도 우울하고 어둡기만 한 칙칙한 분위기의 소설은 되지 않았다. 나쁜 경험 이후의 일상과 트라우마로부터의 탈출, 다면적인 심리와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경험을 한 세명의 인물(제이스,크리스천,엄마)이 서로 다른 상처를 갖고, 다른 반응을 보이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가장 오랜시간 시달리고 그만큼 만성이되어(혹은 그 외에 드러나지 않은 여러가지 이유로) 쉬이 떨치지 못하는 엄마의 회복과 극복을 기다리는 제이스의 마음이 이 책의 제목(한글판)에 실려있지 않나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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