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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평점 :
이야기의 시작,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그에 대한 목록을 남겨두고 떠난다. 남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아시아인, 여자는 미국인이며 백인이다.
박병호, 헨리파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어떠한 인물이 되어 특정인물에게 다가가고 그에 대해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특성상 한국계
혹은 아시아계 인물들을 주로 맡고 있다. 사무소에서 그는 존 강이라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이자 정치인의 조사를 맡게된다. 존 강에 대한 조사와
접근, 아내 릴리아와 함께 겪은 상처와 불화, 이민가족이라는 성장배경이 번갈아 굵은 줄기를 이루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번째로 이창래라는 작가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 한국이름의 작가인데 책마다 번역가의 이름이
쓰여있고 미국문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소리에 호기심이 일었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니 3살 때 가족의 이민으로 미국에서 살아온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문단에 영어로 쓰인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두번째로 이 책은 주인공은 작가와 비슷한 배경을 지닌 한국계 미국인이며,
작가의 데뷔작이란 것에 끌렸다. 정리하자면 이창래라는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고 그 첫만남으로 작가의 데뷔작을 먼저 읽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껏 읽어온 한국인이 쓴 이주문학 즉 디아스포라 문학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는 작품속 헨리처럼 한국어를 할 줄 알까? 그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부모님의 모국, 자신의 지역적 인종적 뿌리에
다시 돌아올 때 그 번역본을 거침없이 읽어내릴 수 있을까?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이야기와 탄탄한 구성에 감탄하면서도 책을 덮은 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민가족이라는 그의 성장배경과 부모님에
대한 감정, 생각(이는 이야기속의 어느 부분과도 연결되는 서사적 배경이기도 하다)에 대한 부분과 서정적인 문장들이었던 것 같다. 데뷔작임에도
영미문단과 각종 미디어에서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문체라는 호평을 받았던 책의 문장들은 한국어로 번역되어도 과연 그 힘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 원작에서는 어떤식으로 표현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읽어나갔다.
이민세대와 그 2세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상황과 감정들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이민 2세인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들어났을
터인데, 이민 후 정착과 성공을 위한 부모(이민 1세대)들의 노력과 발버둥, 동시에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묘한 고집을 자식으로서 혹은
(당사자나 타인이 아닌)제 3자로서 누구보다 가까이 보고 느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가족에 대한 관찰과 감정(애증)을 넘어 본인의
문제로 나아갔을 때 완전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특유의 그 간격이 가져오는 공허함과 어지럼증까지.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국민 다수의 공감과 주목을 이끌어낼수 있는 인물과 배경을 다룬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이민과 그에 따른 이민가족에 대한 상황과 문제는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문학에 있어서도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주목하고 자주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