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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생
정길연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평점 :
그 누군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으랴만은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첫번째, 두번째 단편<수상한 시간들>과 <당신의 심연>의 주인공들은 거절을 잘 하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보이는 관대함 등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가진 사람으로 그 약점으로 인해 남편도 아닌 옛 직장 동료였던 남자의 장례식 자리를 지키거나 유기와 방치를 일삼는 남자에게
휘둘리기도 한다. 해설자의 말을 빌리지만 이런 주인공들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쩌면 타고난 여성적 감수성과
특징들(모성애, 연민 등)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예상치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주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간 생의
모습은 하나같이 녹록치가 않다.
총 7편의 단편들은 단단하고 조금은 컴컴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도 한결같이 동적인 느낌을 준다. 어찌어찌 선택하고(혹은 휩쓸리고)
순응하며 살아온 삶의 모습은 그리 밝지만은 않지만 어찌됐든 멈추거나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강렬하고
생생하다는 느낌이 든다. 몇몇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미래가 남아있다는 여지를 남겨준다.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단단한
모습이 보인다.
아무려나, 나는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통과할
것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조용히. (수상한 시간 中)
지금 내가 할 일은, 정녕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얼음 벌판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나아가는 것뿐이다. (알래스카, 그 후 中)
살다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고(수상한 시간들, 당신의 심연), 화합을 꾀하다 와장창 무너져보고(알래스카, 그 후), 극단적으론
생에 시달리다 택한 비극적인 죽음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우연한 생). 때론 고생과 굴욕에 물들기도(가면과 깃털)하고,
험담을 좋아하는 이웃에 넌덜머리를 내기도 하며(자서, 끝나지 않은), 그래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고(Delete) 싶어질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이런 고달프고 다양한 삶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어쩌면 우연히 맞닥드린 생 앞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차피 뒤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좋든 싫든 삶은 계속된다. 우리의 선택지는 그저 앞으로 '달려 나아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