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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소중하고 의지했던 가까운 사람을 잃은 한 사람의 치유과정을 소설로 만들었다. 더디지만 서서히 치유되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히로시의 그 치유과정을 끈질기게 지켜봐주는 주인공 마나카의 시선이 따스하다. 열정적으로 사랑하거나 커다란 풍파를
함께 겪어나가는 역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어느새 함께 건너버린 다양한 삶의 고난을 다시 함께 마주하며 그동안 잘 해왔다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포근한 이야기였다. 독특하지만 순수한 두 사람이 어려서부터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관계는, 도드라지거나 격한 애정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단단하게 서로를 붙잡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특유의 오컬트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도 히로시라는 인물의 상처에 배경으로 나타난다. 히로시는 묘한 종교 생활에
빠진 부모님과 떨어져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간다. 비슷하게 외톨이인 히로시와 마나카는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게 되었고 히로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기점으로 마나카는 히로시를 한층 더 가까이 두고 기운을 복돋아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이란 가만히 내버려두기, 곁에
있어주기, 함께 여행하기,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기 등등 우리가 쉬이 떠올릴만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녀만의 언어와 생각으로 풀어낸 그
이야기는 조금은 특별하고 아주 따듯하게 들려온다.
무언가가 치유되는 과정이란, 보고 있으면 즐겁다. 계절이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계절은, 절대로 보다 낫게 변하지 않는다. 그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처럼, 낙엽이 떨어지고 잎이 무성해지고, 하늘이
파래지고 높아질 뿐이다. 그런 것과 흡사하게, 이 세상이 끝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가, 그 상태가 조금씩 변화해갈때, 딱히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어떤 위대한 힘을 느낀다. 갑자기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고, 문득 불편하던 잠자리가 편안해지는 것은 곰곰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고통은 찾아왔던 것과 똑같은 길을 걸어 담담하게 사라진다. (본문 중 131p)
마나카는 히로시를 치유해주기 위해 곰곰히 생각하고 노력하는 와중에 치유과정에 대해서 그 과정을 겪는 사람에 대해 히로시와
자신이라는 개별적인 존재들에 대해 성찰적인 사색을 즐긴다. 무겁지 않되 진지하게 그 모든 사색을 즐기는 마나카란 존재는 미숙하지만 어떠한 생각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개방적이고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길지 않은 이야기, 담담하고 사색적인 서술들, 그에 더해진 마야막스의 그림(MAYA
MAXX)도 좋았다. 책에는 그림에 대한 다른 해설이나 설명(책에 맞는 장면을 그렸다거나, 이미 그려진 그림을 차용한 것이라던가)이 붙어있지
않다. 그림을 그린이와 그림의 이름만 쓰여있다. 역자나 작가의 후기같은 것 마저 없었다. 오로지 그 이야기만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그래서 더
차분하게 글 안에서의 마나카의 사색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기에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