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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핀 벚꽃 -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선집, 문학의 창 10
고바야시 잇사 지음, 최충희 옮김, 한다운 그림 / 태학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하이쿠를 읽다보면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이 든건 나뿐이 아니었는지 하이쿠책을 뒤적거리다보면 선명하지 않더라도 점점이 그려진
그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책에도 간간히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가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워낙에 시가 쓰여질때 그려진 그림마냥
시침을 떼고 있는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전통 하이쿠시인 중 세 손가락에 드는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를 읽으면서 함께 감상하기 좋은 동양화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남이 보면 기구하다 싶을 정도의 삶을 살다간 잇사의 작품에는 늘 치밀한 관찰력과 유머가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항상
방황하며 가난하게 살다간 그의 유머는 어쩐지 가벼운 농담이 아닌 초월적인 진심이 함께 담겨있는 것 같다. 벼룩과 개구리를 사랑한 시인, 가족에
대해서는 진솔한 애정을 잔뜩 담은 잇사의 하이쿠는 보고 또 봐도 항상 좋다. 잇사에 대한 정보는 적당히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여서 그저 복습하는 기분으로 서문과 해설을 가볍게 읽었고, 하이쿠와 책의 배경-첨부된 그림 등-은 꼼꼼히, 각 하이쿠의 해설은 흘리듯
읽었다.
이미 두꺼운 책 한권으로 잇사의 하이쿠를 제법 만나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읽었던 것도 번역과 해설에 따라 생각보다 느낌이 많아 달라
새로웠다. 비록 일본어를 읽지 못하더라도 번역본 밑에 한줄로 원문을 함께 보여준 점은 좋았다. 그러고보니 한국현대시마냥 하이쿠의 제목을 붙여놓듯
맨위에 한 줄을 적어둔 것이 특이했다. 대부분이 첫마디의 반복, 혹은 계어를 빼어놓은 것이었는데 굵은 글씨로 하이쿠가 시작하는 윗줄에 자리잡고
있으니 정말 제목을 써놓은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을 모아 목차를 만든 것은 이해하지만 없었어도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했다. 만약 하이쿠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이쿠란 이렇게 제목을 달고 시작하는 시로군-하고 착각하게 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봤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 관련된 계어를 사용한 하이쿠들을 묶었다. 하이쿠의 해설은 하이쿠에 얽힌 배경을 알려주는 정도였는데 맨 마지막에
계어를 소개해준 점이 인상깊다. 대부분은 직접적인 경우가 많아서 알아채기 쉽지만 하이쿠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계어(물론 계어가 없는 하이쿠도
있다.)를 다시금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도록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동네 도서관엔 하이쿠 책이 딱 4권 있었다. 그 중 이
책은 2008년 출간된 책으로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 어색한 하이쿠란 문학을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소개시켜주려 노력한 책인것 같다. 어설픈 면이
있지만 꼼꼼하게 책안의 모든 부분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현대시에 비해 하이쿠는 더 여유있고 쉽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 길이가 짧아 사실 집중해 읽지 않으면
의미도 내용도 쉽사리 기억되지 않은 단점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길이가 짧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이 눈에 들어오면 왠지 외우고
싶어진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작품이 많은 만큼 마음에 드는 것도 너무 많아 찜만 해두고 일일이 다시 보고 외우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는
계절별로 하나씩 작품을 골라 외워보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내가 고른 각 계절의 하이쿠(계절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골랐다.)를 소개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야윈 개구리 / 지지 마라 잇사가 / 여기에 있다 (계어
'개구리' 봄) - 본문 중 24p
아버지 함께 / 새벽녘 보고 싶네 / 푸르른 논을 (계어
'푸르른 논' 여름) - 본문 중 80p
지는 억새 꽃 / 춥기 시작하는 게 / 눈에 보이네 (계어
'억새 꽃' 가을) - 본문 중 156p
맛깔스러운 / 하얀 눈이 퍼얼펄 / 내리는 도다 (계어
'눈' 겨울) - 본문 중 200p

밤에 핀 벚꽃 / 오늘 또한
옛날이 / 되어버렸네 (계어 ' 밤에 핀 벚꽃' 봄) - 본문 중 6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