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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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대화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동한 대사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이 서평에서는 너무 많은 부분을 노출시키기보다 기본적으로 책에 소개되어 있는 각 막에 프롤로그처럼 쓰여있는 글들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

 

 

 

1막.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다보죠. / 하늘에 물고기가 날아다녔어요
2막. 전 금방 얼 거예요. / 얼어서 눈동자가 제일 먼저 깨질 거예요.

/
깨진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겠죠.
3막. 말해줘. 사랑이 뭐야? / 이불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거.


 

 

 

시극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작품을 읽어보기 전에는 이미 쓰여진 시가 차용되거나 시의 형태를 따라 대사가 만들어진 연극대본이라고 상상은 했었다. 실제로 극의 일부분으로 시를 차용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이러한 정의는 딱히 절적한 것은 아닌것 같다. 시는 소설보다 혹은 다른 풀어쓴 글들보다 정제되어 있는 단어와 문장을 구사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정제되어 있다거나 상징적이라거나 이렇게 어려운 풀이를 제쳐두고서라도 시는 그 시라는 단어에서부터 특유의 울림을 준다고 늘 생각했다. 어떠한 형태로 쓰여졌더라도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할 때가 있다. 어떤 대사 한 부분이 어떤 인물의 이야기가 혹은 이 전체의 시극자체가 읽는 이에게 울림을 준다면 그게 시극인걸까 하고 애매모호하게 생각해봤다.

 

 

시극의 정의를 찾아봤다. 시극이란 1. 운문(韻文)이나 시의 형식으로 쓰인 희곡. 2.대사가 시형으로 꾸며진 연극을 시극이라 한다. 운문 형식을 띠는 것이 통례이지만 산문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현대극의 시초는 시극이었다. 김경주의 시극운동이 무얼까 너무나 궁금했는데, 마치 르네상스처럼 다시 극의 기원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인걸까. 하지만 그가 쓴 글은 복고풍의 전통 시극의 난해하거나 옛스러운 말투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현대에서 쓰이는 시를 극에 투영한 말그대의 현대의 시극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상상한대로 시가 주는 울림이 연극이라는 상연방법을 만나 더 거대하게 울려퍼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경주의 시극과 시극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이제부터는 이 작품에대해 이야기하자.

 

 

 

이 작품에는 총 3명의 인물이 나온다. 김씨, 파출소직원, 사내. 배경은 폐기된 해수욕장의 파출소. 김씨는 다리가 없어 매일 길가에서 동냥을 하며 먹고 사는데, 눈이오는 추운날 바다로 기어가던 김씨를 파출소직원이 업어 파출소로 데리고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파출소에서 몸을 녹이며 대화를 시작한다. 이 연극의 대부분은 이 두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가장 낮은 장소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씨와 아무도 찾지 않는 파출소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파출소 직원의 대화는 진지하고 시적이며 동화적인 면모도 보인다. 눈과 바닷가라는 배경은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준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고 보듬어주고 존재를 긍정해주며 삶의 진지한 것들(사랑, 가족, 인생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높낮이나 처지에 상관하지 않고 한 사람이 묻고 다른 한 사람이 대답한다. 각자의 이야기는 평가되거나 반박당하지 않고 그저 긍정되거나 감탄(혹은 격려)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방식의 대화가 순식간에 읽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김씨는 두 다리와 아내를 잃었고 파출소 직원은 아들과 직장을 잃었다. 무언가에 대한 어떤 존재에 대한 상실을 경험한 두 인물은 이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에게 닿게되고 그 장면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상연하는 걸 보고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상연이 가능한 걸까 하는 의심이 맞부딪혔다. 소설에서 느꼈던 치밀하면서도 극적인 여러 장면과 감동을 영화화된 작품에서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이 시극은 연극상연을 위해 쓰여진 글의 장르이기도 함으로 장르의 변환에도 고스란히 이 감동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총 3막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허희가 각 막에 붙인 이름과 부제를 첨부한다. 내용과도 너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져서 애초에 작가가 붙여놓은 걸 내가 놓친건 줄 알았다. 맨앞에 쓰여진 책 자체에서 내놓은 몇줄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막. 타락천사(
墮落天使) : "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전 제 다리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요?"
2막. 취생몽사(醉生夢死) : "죽은 새가 땅에 내려와 눕지 못하고 하늘을 맴돌고 있어요."
3막. 화양연화(花樣年華) : "어둠속에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조금만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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