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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 헤르만 헤세 시 필사집 ㅣ 쓰는 기쁨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월
평점 :
헤르만 헤세의 시와 소설과 문장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소환되고 소비되는 것 같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시 100편을 모아두었고 넉넉하게 옆자리 비워두어 필사할 공간을 남겨두었다. 책에 바로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는데 시를 담은 페이지도, 필사를 위한 페이지도 디자인이 깔끔하고 부드럽다. 시의 제목과 헤세의 이름, 그리고 조그맣게 그려진 몇몇 그림들이 눈이 편안한 그린 계열(올리브그린?)로 통일되어 더 그런 인상이 남은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헤세의 시는 편지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했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신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시. 시의 제목들은 담백하게 어떤 시기나 장소의 이름을 적어두기도 하고, 날씨나 어떤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기도 해서 목차를 보며 더 일기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녁 파티'같은 시는 정말 작가가 어떤 파티에 초대받아 있었던 일을 집에 돌아와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둔 글 같았다.
훌륭한 정원사였던 것이 영향이 있는지 계절을 노래하는 시들도 좋았다. 시는 읽을 때마다 마음에 남는 것이 다르고, 시의 어떤 부분에 깊이 공감하거나 감상을 남기는 건 지금의 내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해 늘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그냥 지금 시기에 잘 어울리는 시를 하나 골라 필사해 보았다. 그래도 평소 사용하는 필사 노트가 있는지라 이 책은 당분간 시를 음미하며 깨끗한 채로 둘 것 같다.


필사집의 제목도 시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시집의 제목이 드러난 시를 찾아보는 것도 시집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인지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표제작이 나오길 기다렸다. 해가 바뀌고 무언가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으면서도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헤세의 시를 읽고 쓰자니 조금 마음의 속도가 느긋해진 기분이다. 헤세의 시를 느긋하게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하나하나 따라 적어가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