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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주인공 선우혁은 12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자신이 어릴 적 사고로 형은 세상을 떠났고, 가족들은 형의 방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혁은 자신의 형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고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12년 차이를 둔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는 형, 교복 입은 자신을 보며 형을 떠올리는, 형 선우진을 아꼈던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여러 사람의 기억에 남은 형의 조각들을 차근차근 모아보는 혁의 이야기.
인공지능을 이용해 만드는 가상 음성 친구 '프프',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난달' 등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한 듯한 소설 속의 세계는 현재의 모습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혁은 자신이 난달에서 친구와 비밀 장소를 만들어 조용히 공유하고 즐기는 것처럼, 형이 고등학생 때 유행하던 가우디라는 이름의 메타버스가 유행하던 것을 알게 된다. 충동적으로 형의 아이디와 비번을 찾아 들어가 본 형이 만들어낸 세계에는 곰솔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있었는데...

나는 말이야 가끔 인간에게도 각자 특별한 제삼의 눈이 있다고 생각해. 남들은 감지할 수 없는, 아니면 크게 감흥 없는 무언가를 유독 강하게 느끼고 끌릴 때가 있잖아. 그것이 재능이나 적성이 될 수도 있고, 나만의 가치관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인연이나 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똑같이 반응한다면 세상이 되게 삭막할 것 같지 않아? 물론 보편적인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서 세상에는 또 비밀이 생기는 모양이야. 내 온점에만 반응하는 무엇을 다른 이들은 결코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가끔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본문 중 158p)
누군가에 대한 기억으로 혹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변한 나의 모습이 있다면, 그 이전에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주인공 선우혁은 자신에겐 마치 빈칸처럼 남아 있던 형에 대해 궁금해하고 형의 기억과 비밀을 조심스레 파헤쳐 가며 자신의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조각마저 찾아낸다.
처음엔 의문형으로 잘못 읽었던 제목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부드러운 권유형으로 읽힌다. 애써 부정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자신의 본 모습을 좋아하라고 다정하게 권해주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면으로 남아있게 될까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혀가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주인공이 사랑스러운 책. 이희영 작가님 특유의 매력적인 주인공에게 몰입해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책.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