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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2020년 9살이 된 마티아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밀라노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빠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데 하필 그 시기 밀라노에 록다운이 시작되고 엄마는 물론 마티아에게도 불편하기만 한 아빠와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의 생활 변화들은 이미 우리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이는 사람이 늘고, 외출금지나 거리 두기 등을 강력하게 적용하여 벌금 고지서를 받아오는 장면도 여러 번 나온다. 아이의 시선에서 보아도 가족들이 모여앉아 일주일의 일정이나 있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일요일이 아니라, 모든 일정이 중지되고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는 연속되는 일요일을 맞이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에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오늘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 내일 더 힘껏 포옹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우리가 포옹할 수 있어?"
누나에게 물었다.
"마티아, 저건 일반적인 내일을 말해. 일주일 후일 수도 있고, 한 달, 일 년 뒤 일 수도 있어."
"마티아, 우리 아가. 제발 부탁이니 엄마 말 잘 들으렴. 요즘 부쩍 잘 안 먹는다고 하던데, 진짜야?"
나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생각과는 반대로 모두 발코니에 나와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에 서서 다른 발코니 사람들과 잡담을 하는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전 세상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겨우 인사나 하는 게 전부였다.
- 본문 중 49p, 92p
경험상,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도 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소통과 연결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책 속 이태리 아파트에서는 발코니가 그 연결의 창구가 되어준다. 3층에 사는 마티아가 발코니로 나가 바로 위층에 살고 있는 젬마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문득 발코니를 통한 소통이 자신만이 쓰는 방법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평소에는 인사를 할까 말까 하는 이웃들이 발코니에서 서로 잡담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고 있던 것이다.(가끔은 노래와 연주로도.) 이렇게 조금은 소소하지만 특별한 변화와 장면들이 이야기 내내 등장하곤 한다.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꼬마 마티아가 겪어낸 어떤 시기의 일종의 모험담은 재미있지만 현실과 너무 닮은 그 세계가 마냥 가볍게 읽히지 않는 면도 있다. 현실을 반영한 한 시기를 배경으로 가족 간 혹은 아파트 내의 사람들 간의 사건과 변화들을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2080년, 손자를 가진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 마티아가 60년 전을 떠올려보며 쓴 자신의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것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손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재미있는 설정이라는 가벼운 감상을 후에 책을 전부 읽었다. 그런데 전부 읽고 난 뒤에 이러한 설정을 다시 보면 대부분의 독자는 한 가지 소망이나 기대를 하게 된다. 언젠가 우리도 지금의 유별난 상황을 후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서 떠올리게 될 거라는, 지금의 상황이 언젠가 종결되고 우리는 무사히 그 시간을 넘길 거라는 기대를.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