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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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에는 얼어붙은 호수가 나온다. 주인공 호정은 어렸을 때부터 호수 위에 발을 들이는 걸 무서워했다. 꽁꽁 얼어붙은 수면 아래 무엇이 있을 줄 알고, 하는 마음에 겁을 냈다. 하지만 호수에는 늘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무엇이 있을지 모를 호수 한가운데에는 점점 균열이 생기고, 따스한 봄이 오면 결국 모두 녹아내린다.

가족과 사랑과 우정과 상처들이 어지러이 얽힌 호정이의 마음처럼 꼭꼭 숨기다 이내 펑 하고 터져 나올 무언가가 호수 밑엔 분명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정은 그 무엇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알지 못하더라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런 것에 더 예민한 아이여서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자리를 걷는 것도 아니고 호수 깊이, 도무지 바닥을 알 수 없는 호수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은 뭘까? 포근하게 보이는 눈 밭 아래에 대체 뭐가 있을 줄 알고. (본문 중 16p)



잔소리쟁이 아빠, 그런 아빠를 말리고 호정의 편을 드는 엄마, 귀여운 동생 진주, 그리고 까칠한 고등학생 호정까지 네 식구는 현재 겉으로는 제법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호정이 태어나며 운동을 했던 호정의 부모님은 꿈을 포기하게 되고,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어린 호정은 할머니 댁에서 그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부모의 부재, 할머니의 애정, 고모와 삼촌의 불평 또는 안쓰러운 시선 등에 둘러싸인 생활은 호정의 마음에 여러 번 상처를 남긴다.

학교생활은 친구 나래와 나래의 남자친구 보람이와 함께 할 때가 많은데 이들의 점심시간에 전학생 은기가 함께하게 된다. 호정은 은기와의 만남에서 은기 역시 자신과 같이 질문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그런 기억이 있는 아이인 걸 알게 된다. 은기와 가까워질수록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미움받게 되거나 멀어지게 될까 봐 쉽사리 서로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가고 함께 흔들릴지언정 겨우 손을 마주 잡는 사이가 된다.

  사람은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제 마음의 일을 어째서 자신이 모를까. 그건 제 안에만 담긴 거라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인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끝내야 아무도 모를 일인데.

​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었고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손이란 참 힘이 세구나. 그저 조금 힘을 주었을 뿐인데 마음이 전해지는구나. 따스해지는구나.
(본문 중 146p, 160p)





호정이 겪은 그 흔들림들은 단순히 사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전에 쌓인 트라우마와 상처와 우울들이 사춘기라는 예민한 시기와 겹쳐 터져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기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될 뻔했는데 그 모든 것이 무너진 게 본인 탓이라는 자책이 더해져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말로는 은기를 탓하면서도 진심으로는 본인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호정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순간적으로 울컥울컥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들을 평소처럼 삼키지 못하고 소중한 친구들에게 쏟아내 점차 고립되는 모습도 슬펐다. 은기가 겪은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고, 그 일의 소문이 학교에서 퍼진 것도 은기와 그 주변의 아이들에겐 분명 동요할 만한 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 중엔 가볍게 떠드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말을 삼가고 누군가를 걱정하는 아이들 또한 있었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저마다 아프기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특히나 크고 드문 일을 겪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요히, 누구도 볼 수 없는 내면에서의 큰 흔들림을 겪어낸 호정에게 몰입하며 읽었다. 그 흔들림이 무너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들을 녹여내기 위한 것이라 굳게 믿어본다. 시작과 끝에 나오는 호수의 비유와 기억에 대한 글귀들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호정이와 은기의 봄이 어서 오기를.





※ 창비 출판사의 블라인드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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