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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파는 소년 - 청소년 성장소설 십대들의 힐링캠프, 소망 ㅣ 십대들의 힐링캠프 39
김수정 지음 / 행복한나무 / 2021년 12월
평점 :
어느 골목 얼핏 점집같아 보이기도 하는 수상한 가게가 있다. 가게의 직원은 정우와 민성, 두 명이 전부, 이 가게에서 취급하는 것은 술이나 미래 등이 아닌 '감정'이다. <감정을 파는 소년>이라는 제목에 맞게 사람에게 감정을 추출하고 주입하는 일은 미성년자로 보이는 민성의 몫이다. 가게 사장인 정우는 이러한 일을 맡아하는 민성을 엔지니어라 부른다. 제목을 보자 꿈에서 느낀 감정을 병에 담아 꿈의 값으로 받는다는 어떤 책의 설정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꿈이 아닌 현실의 일이었고 감정을 돈으로 사거나 팔고 있다는게 다르지만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설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감정을 파는 '소년' 민성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목차를 보면 어떤 감정을 사고 파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사랑과 증오, 열등감, 슬픔은 그러려니 했는데 행복을 팔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떤 감정때문에 힘들다'는 마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면서도, 그 감정을 쉽게 팔아버리는 등장인물들의 선택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정우는 감정을 사고파는 일이 고객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라지만, 민성은 어떤 감정을 하나를 덜거나 더하는 인물들의 삶이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고 부작용을 겪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추출한 감정을 제대로 보관하고 다룰 수 있도록 섬세하게 관리한다.
"우리가 쓸모없는 감정을 매입해줬으니 앞으로는 잘 살겠지?"
손님이 돌아간 바테이블을 마른행주로 닦던 정우가 혼잣말인 양 민성에게 물었다. 아마도 정우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이 어디 있어. 여자는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을 겪게 될 거야. 어쩌면 벌써 소중한 무언가를 놓쳤을 수도 있고."
- 사랑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따뜻하게, 증오는 캔에 담아서 차갑게, 열등감은 나무 그릇에 미지근하게, 슬픔만 머그에 담아 실온보다 조금 따뜻하게.
정우와 민성의 가게를 찾는 저마다의 사연을 읽는 건 재미있었는데, 막상 주인공의 이야기나 능력을 갖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웠다. 민성이 정우의 가게에 찾아온 이유는 드러났으나 어째서 함께 지내고 있고, 감정을 사고팔게 되었는지의 중간과정이 많이 생략된 느낌. 정우의 누나인 연우가 얽혀있긴 하지만 심지어 정우는 민성이가 감정을 사고파는 이유(라기보다 목적)도 몰랐다. 그저 '감정을 사고 파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고 태평하게 받아들인다는 해석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런 해석조차 애매할 정도로 정우의 캐릭터가 드러난 장면이 적었고 그만큼 민성이와의 관계성도 조금 약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인 민성의 사연이 가장 궁금했기에 이런 점들이 더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결말과 감정을 사고판다는 설정 자체가 독자에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는 점은 정말 좋았다. 나라면 어떤 감정을 사고 싶고 어떤 감정을 팔고 싶을까. 내 감정을 도려내어 남에게 팔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서 내가 받아들이면 내 인생은 그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까.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사실은 가능하다 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보다 내 감정을 잘 키우고 다독이는 게 더 나은 것 아닐까. 청소년 시리즈의 책으로 나온만큼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사고팔지 않기를, 소중히 여기기를, 여러 감정을 섞어 녹이고 이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