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센, 게으름이 희망이 되는 시간
아네트 라브이지센 지음, 김현수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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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가 나의 생산성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고, 주로 나의 경제적인 생산성 없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비난하고 화를 내는 글이었다. 당시에 내가 가진 재주나 나의 관심사는 취업을 비롯한 경제적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취미 활동을 하거나 멍하니 쉬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으레 자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선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바쁘게 사는 게 미덕이고, 유익한 활동으로 시간을 꽉 채워야 보람이 있다 강조하는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권하는 '닉센'이란 과연 무엇일까?




책은 일단 읽기 쉬운 구조를 취한다. 닉센이 무엇인지, 어원은 어디서 왔는지, ​닉센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에는 어떤 것이 있고,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다채로운 내용을 여백이 넉넉하고 글자 크기도 큼직한 본문으로 전하며, #여유로움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을 것 같은 그림들을 본문 곳곳에 배치한다. 닉센의 어원이 네덜란드어에서 나왔고, 이를 실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네덜란드의 생활 모습을 끌어와 설명하기 때문에, 조금은 낯선 네덜란드의 단어들과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닉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잠을 자는 것과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지만 잠을 자는 시간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책에서는 닉센이 마음 챙김의 다른 형태도 아니라고 말한다. 내 맘속에 우선순위를 제대로 알고, 중요한 것만을 남겨 그를 위한 시간 배분을 하는 것, 일상 어느 곳에서든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이 닉센을 위한 준비과정이자 실천으로 이어진다. 닉센이 무엇인지는 두루뭉술하게 느껴져도 책 안에서 소개하는 닉센 실천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행복 다이어리 만들기, 아티스트 데이트, 사람 구경, 바람 쐬기,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기 등등. 이름만 들어도 해보고 싶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내가 A와 B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각각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A 모드와 B 모드로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닉센은 내 안의 그 전환 스위치를 누르는 시간이다. 짧더라도 꼭 필요한, 늘 작동하던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시간. 나는 닉센을 그렇게 이해했다. 



책의 소개 글을 보고 책을 읽는 내내 멍 때리기 대회가 생각났다. 허송세월, 게으름, 빈둥빈둥 등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멍 때리기 대회는 바쁜 현대인에게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최되어 '멍 때리기'라는 단어에 긍정적인 의미를 더해주었다. 닉센이라는 단어나 다른 이름을 붙이지 못했더라도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쩌면 우리는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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