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 벽 뒤의 남자
윌 엘즈워스-존스 지음, 이연식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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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 마지못해 끌려 나온 범법자, 미술관과 갤러리를 조롱하는 예술가. 책의 맨 처음 등장하는 뱅크시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뱅크시는 그래피티 작가이고, 작품도 유명하지만 다양한 기행으로 더 유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한 기행 중에 내가 아는 단 한 가지는 경매에 낙찰된 풍선과 소녀 그림을 반쯤 갈아버렸다는 것이 전부였다. 뱅크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뱅크시의 진짜 작품과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페스트 컨트롤(fest control)이라는 조직이 뱅크시를 외부인으로부터 보호하는 데도 관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일단 내가 그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거다.





책에서는 뱅크시가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하기보다 뱅크시가 쭉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오히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를 조사하고 인터뷰하는 것에 그가 누구인지를 파헤치지 않는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고 거듭 언급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미술관 침입 활동이라던가, 로보와의 다툼 혹은 전쟁, 여러 번의 성공적인 전시와 딱 한 번의 실패, 브리스틀, 런던, 가자 지구 등에서의 활동, 익명을 보호받기 위한 노력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으로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벌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산 사람들은 다음날이면 껑충 뛰어오른 값으로 그의 작품을 팔 수 있다. 어떤 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300파운드에 산 <녹색 폭동>이 7만 8000파운드에 팔렸다는 이야기와 그가 만든 가짜 패리스 힐튼의 CD는 진짜 패리스 힐튼도 '멋지다'며 구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전자는 놀라서 후자는 웃겨서) 벽에 그린 그림을 사거나 훔치려는 소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래피티를 사랑해요. 그래피티라는 말도 좋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지만 내 생각에는 부질없어요. 모든 그래피티가 놀라워요. (...) 거리에서 작업하기에 너무 복잡하거나 공격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평범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죠. 하지만 그래피티 작업을 그만둔다면 나는 처참할 거예요."


  익숙한 것과 놀라울 만큼 생소한 것을 결합 시키는 방식, 유머, 작품의 질과 기교... 원본이 사라지고 남아 있는 사진을 지금 보아도 당장 감탄할 수밖에 방식으로 뱅크시가 애초부터 남다르게 탁월한 존재임을 보여 준다. (...) 1970-80년대 뉴욕 거리와 지하철에서 갤러리로 끌어올려진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는 다르게 뱅크시는 앞선 어느 예술가도 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거리에서 자신을 알렸다

(본문 중 50p, 63p)


25년간 자리를 지키던 로보의 작품을 덮어버린 사건을 계기로 런던의 전통 그래피티 세계에서 환영받지 받지 못했어도, 비평가들의 조롱과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그래피티를 사랑했고 작업해왔다. 그는 자신의 수익을 합법적인 그래피티 작업 공간을 마련하거나 그래피티 예술가들을 동원한 전시나 파티를 기획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래피티를 비롯한 거리예술가들은 숨어있던 관객들을 끌어내고, 예술작품을 보러 꼭 갤러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렸다. 그래피티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뱅크시를 비롯한 동시대에 활동하는 그래피티 예술가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침 국내에서 뱅크시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그 전시를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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