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에 마지못해 끌려 나온 범법자, 미술관과 갤러리를 조롱하는 예술가. 책의 맨 처음 등장하는 뱅크시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뱅크시는 그래피티 작가이고, 작품도 유명하지만 다양한 기행으로 더 유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한 기행 중에 내가 아는 단 한 가지는 경매에 낙찰된 풍선과 소녀 그림을 반쯤 갈아버렸다는 것이 전부였다. 뱅크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뱅크시의 진짜 작품과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페스트 컨트롤(fest control)이라는 조직이 뱅크시를 외부인으로부터 보호하는 데도 관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일단 내가 그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거다.

책에서는 뱅크시가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하기보다 뱅크시가 쭉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오히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를 조사하고 인터뷰하는 것에 그가 누구인지를 파헤치지 않는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고 거듭 언급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미술관 침입 활동이라던가, 로보와의 다툼 혹은 전쟁, 여러 번의 성공적인 전시와 딱 한 번의 실패, 브리스틀, 런던, 가자 지구 등에서의 활동, 익명을 보호받기 위한 노력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으로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벌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산 사람들은 다음날이면 껑충 뛰어오른 값으로 그의 작품을 팔 수 있다. 어떤 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300파운드에 산 <녹색 폭동>이 7만 8000파운드에 팔렸다는 이야기와 그가 만든 가짜 패리스 힐튼의 CD는 진짜 패리스 힐튼도 '멋지다'며 구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전자는 놀라서 후자는 웃겨서) 벽에 그린 그림을 사거나 훔치려는 소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