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비야·안톤의 실험적 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톤 반 주트펀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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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여행가이자 구호활동가 한비야. 독특하지만 예쁜 이름과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그녀의 이야기와 출간된 책들은 내가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미 유명했다. 동시대 사람인 건 확실한데 어딘가 먼 사람, 나이는 잘 몰라도 그녀의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떤 젊은이들보다 팔팔하고 씩씩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돼서 내게 한비야 씨는 늘 젊은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 국제구호학인가, 그녀가 이미 활동하던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그녀가 이미 60이 넘었고, 6살 연상의 네덜란드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이 책이 출간된 올해가 바로 3년차, 따끈따끈한 신혼이다. 그녀의 생활은 아직도 열정이 넘치는지, 그 에너지로 여전히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지,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이 스스로 정한 독특한 결혼생활의 방식은 무엇인지 책을 펼치기 전부터 참 궁금한 게 많았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규칙의 소개와 그에 따른 현재 생활 모습을 다룬 1장, 결혼 전 장거리 연애시절 이야기, 언약식과 결혼식, 독특한 신혼여행 등의 이야기를 다룬 2장, 결혼 이후 그들이 정한 대로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살아가는 양쪽에서의 일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3장,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에서 혼자 있는 힘과 함께 하는 힘을 발휘해 살아갈 그들의 생각과 계획을 담은 4장. 책은 이렇게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부인 두 사람이 공동저자이지만 한비야 씨의 분량이 더 많다.

  안톤과 함께 쓴 이 책은 우리의 알콩달콩 결혼 생활 모습을 모아놓은 이야기가 아니다. 남들과는 사뭇 다른 우리 상황에 맞게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고, 결혼 후 더욱 나답게 살아가는 이야기고, 혼자 있는 힘과 함께하는 힘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다. (중략) 결혼 3년 차, '따로 또 같이' 사는 우리 방식은 지금까지는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그때마다 수정, 보완해가야 할 다분히 실험적인 이 결혼 생활 방식은 그래서 지금도 진화 발전 중이다.

(프롤로그 중 6-7p)

서로를 플래닝 닷컴 코리아, 플래닝 닷컴 네덜란드라고 부르고 경쟁할 정도로 계획과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것에 익숙한 두 사람은 결혼생활에 있어 서로를 존중하고 싸우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을 세웠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그들이 정한 규칙 중 대다수가 아내의 제안인 경우가 많아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보통과는 조금 다르고 평범치 않아 보이는 시도도 거부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이 있기에 그들만의 독특하고 합리적인 규칙들이 생겨난 것 같다.(제안자가 반대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규칙들이 생겨나고 잘 수행되며 점점 보완해나가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세세한 면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쿵짝이 잘 맞는 배우자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감하게 먼저 규칙들을 제안하는 한비야 씨가 쿵이라면 합리적인 결정을 위한 검토와 합의를 함께 할 안톤 씨가 짝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방식, 향후의 활동 계획에 맞춰 결정된 생활방식이 336규칙(한국 3, 네덜란드 3, 각자의 시간 6개월로 1년을 쪼개 지내는 장소를 바꾸는 방식)이며, 연금이나 사회활동을 통해 각자의 수입이 있고 각자의 재산을 합칠 필요 없이 스스로 운영할 만한 두 사람이기에 지출에 있어서의 반반 법칙이 수월하게 이행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두 사람 사이의 규칙이나 방식들은 정말 두 사람에게 최적화된 방법일 따름이라 굳이 이 책을 보고 그 방식을 다른 누군가가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들이 그런 방식을 택하고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과감히 의견을 내고, 남들의 보통이나 실패를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의 최선을 생각하고, 상대의 수긍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오전 10시 전 부정적인 얘기 금지'는 비야가 제안하고 둘이서 합의한 원칙이다. 아침 10시 전에는 절대로 무엇에 관해서 건 누구에 대해 서건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거다. 'NO'라는 말은 물론 일체의 부정적인 단어, 표현, 심지어는 표정이나 손짓도 금지다. 하루를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이 제안이 신선하고 솔깃했다. (중략) 비야는 부정적인 말은 자석처럼 부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앗아간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꼭 해야 할 말이 있더라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부정적인 말이나 상대방을 기분 나쁜 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탓에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탓에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아침부터 별 이유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춤도 춘다. 믿거나 말거나!

(본문 중 40p)


굳이 그들의 규칙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바로 위에 적었지만 사실 하나 굉장히 탐나는 규칙이 있다. 내가 가장 따라 하고 싶고, 온 가족뿐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규칙은 '오전 10시 이전에 부정적인 얘기 금지법'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 직장에 막 출근했을 때, 누군가를 만날 때, 맨 처음이 기분 좋으면 별다를 게 없는 하루여도 무언가 더 수월해지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가족들 간의 아침인사나 아침식사 때의 대화도 그렇다. 어제의 힘들었던 일이나 오늘의 골치 아플 일들을 푸념하기보다 별 내용 없는 긍정적인 표현하나, 서로에게 건네는 칭찬 한마디가 나온다면 분위기가 더욱 화목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루의 첫마디가 가끔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좋은 말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을 간직하려 자꾸 되뇌곤 한다.(예를 들어 오늘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에 주차를 하다 직장 상사를 만났는데, 멋있다! 잘생겼다! 하는 농담조의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을 건넨 분이 자전거를 못 탄다는 뒷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그 덕에 나는 가볍고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힘이 났다ㅋㅋ) 게다가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나 자신도 부정적인 말을 줄이게 된다! 여러모로 좋은 습관이고 많은 사람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이 책 역시 두 사람의 어떤 계획이나 프로젝트 중 하나이며, 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인세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갈 예정이라고 한다. 혼자서도 씩씩한 그녀였지만 책 제목처럼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 같이 쿵짝쿵짝 재미있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게 즐겁고, 한참 어린 사람인 내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괜히 흐뭇하기도 했다. 책에서의 표현대로 '혼자 있는 힘'이 있어야 함께할 사람이 생겨도 나다움을 잃지 않고 함께가 더 즐거울 수 있을 거라는 의견에도 동조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새로운 소식과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어서 참 좋았던 책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의 본문은 신혼부부의 글이다 보니 글 중간중간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나 서로에 대해 애정 어린(=닭살 돋는) 표현들도 심심찮게 나오니 주의하시길!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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