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훈이 토성에 두고 간 정찰선 티스테는 어레스 박사의 도움을 받아 안드로이드의 몸을 갖게 되고 박사를 도우며 살고 있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자신처럼 방치된 우주선이 있을까 여기저기 순찰을 다니기도 하는 나날을 보내며. 한편 맑은 공기는 에메랄드 존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정된 구역밖에 남지 않은 지구에서 나고 자란 룻은 버거집에서 알바를 하고 해커 일을 하며 몸이 아픈 엄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다. 보상금을 노리고 할아버지의 우주선을 찾으러 토성으로 간 훈의 손녀 룻. 둘의 만남은 다소 충동적이고 완전히 진실되지 못했지만,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서로 간의 정을 쌓아간다.


자신을 버려둔 채 돌아오지 않는 않는 훈을 이해하기 위해 고통을 동반하는 감정을 배운 티스테는 너무도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되었다. 안드로이드로 다시 태어날 때의 눈물과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룻에게 틱틱대는 말대꾸를 하며 마음을 연 그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훈과 함께한 과정을 회상할 때를 보면 본래부터 개성적인 인공지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안드로이드로 다시 태어난 순간 눈물을 터트리고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티스테는 우주선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만 빼면 정말 인간 같다. 그는 훈과 함께한 나날들을 소중히 간직한 만큼 다시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은 훈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훈이 위중하며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에 그의 손녀와 함께 지구로 가는 여정을 택한다.


  티스테와 나는 할아버지의 반쪽밖에 모르고 있었다. 달의 이쪽과 저쪽처럼 우주를 누비던 젊은 날의 할아버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지구에 정착할 할아버지. 어느 한쪽도 가짜는 아니었다. 두 인물 모두 다비드 훈이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그분의 초상화를 반쪽씩 나누어 가진 존재였다.​  

(본문 중 138p)


글의 초반 룻과 티스테의 시선으로 번갈아 이어지는 본문들은 길이가 짤막하기도 하고 핑퐁처럼 주고받는 템포가 발랄하고 재밌었다. 후반으로 가면 몇몇 기타 인물들의 시선도 간혹 등장하지만, 한 소녀와 한 인공지능의 시점과 감정으로 가득 찬 서술만큼 다이내믹하진 않았다. 훈이라는 존재의 기억만이 두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데 비슷한 느낌으로 영향을 끼친 걸 보면 훈 역시 자신의 정찰선이자 동료나 마찬가지였던 티스테를 손녀만큼이나 아끼고 진심으로 대해주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 온 힘을 다해서 운다. 그걸 뒷받침하는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내가 발견한 가설을 주장한다.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버림을 받고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처절하게 울 수는 없다고 ……. ​ 

(본문 중 162p)


신뢰와 애정으로 가득 찬 관계였기에 티스테가 훈의 부재에 크나큰 분노와 슬픔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룻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린 티스테나, 티스테에게 거짓말을 해버린 룻은 티스테와 훈이 그랬던 것처럼 관계를 쌓아가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여서 이야기의 전개가 내내 흥미로웠다. 위험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그 안에 살고 있는 관계를 맺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배경이 배경인 만큼 일상적이지 않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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