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에 큰 영향을 미친 미야자와 겐지의 장편동화 '은하 철도의 밤'을화가 후지시로 세이지가 글을 고쳐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 (역자의 작품 해설 中 )이다.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그린 '그림자 그림'이 참 아름답고 특색 있는 책이었다. 표지는 주인공이 은하 철도를 달리는 기차를 처음 발견하는 장면의 그림을 그대로 이용했는데, 그림 자체도 아름답고 빛에 따라 반짝이는 부분이 있어서 책을 받고 반짝반짝한 표지를 한참 감상했던 것 같다.
그때 뒤쪽에서 친절해 보이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희들은 어디로 가니?"
그 사람은 너덜너덜한 옷차림에 수염이 달린 남자였어요.
"우리는 어디든 갈 거예요."
"그거 좋지. 이 기차는 진짜 어디든 간단다."
어디로든 갈수 있는 은하 철도 위로 은하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여행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특히 이야기 속 조반니처럼 학교를 마치자마자 인쇄소로 달려가 일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틈도 없이 팍팍한 생활을 하던 중에 우연히 그런 여행길에 오른다면, 어쩌면 조반니는 그 기차에서 영원히 내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잊을 만큼 환상적이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기차가 정차하는 역과 기차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캄파넬라는 조반니의 친구로, 조반니를 놀리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늘 친절하고 서로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특별한 친구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은하 축제날, 학교가 끝나자 캄파넬라와 조반니는 자연스럽게 강에서 만날 약속을 잡는다.(조반니의 일이 빨리 끝난다는 가정 하에) 다른 친구들과 배를 타며 조반니를 기다리는 캄파넬라와, 일이 끝나자마자 축제가 벌어지는 곳으로 갔지만 다른 친구들의 놀림에 결국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조반니는 은하 철도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마주치게 된다.
기차가 은하 철도를 달리며 백조자리, 쌍둥이자리, 전갈자리 등의 별자리를 지나가고 정차하는 동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맨 처음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화려한 그림들에 더 집중하게 되고, 왠지 중요한 이야기는 빼놓고 겉도는 대화를 하는 듯한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몰입을 잘 하지 못했는데, 결말을 알고 난 후 다시 한번 읽을 때는 아름다운 배경들이 슬퍼 보일 정도였다. 빨간 모자 외에는 검은 그림자로만 그려진 주인공들의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더 디테일하게 상상하게 되었다. 물에 젖은 검은 옷을 입은 캄파넬라, 궁핍한 생활에 많이 입어 해진 옷을 입고 손과 얼굴엔 잉크가 묻어있을 조반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환상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안쓰러워졌다. 원작자인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조반니처럼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지, 아니면 이야기 속 두 사람이 이야기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대답일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