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 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고, 그림이 많다는 이유로 조금 쉽게 봤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것도 꽤 방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참신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보면서 꽤 많이 웃었고 한가한 날에는 엄마를 붙잡고 들어보라고 하면서 소리 내 책을 줄줄 읽기도 했다. 그만큼 혼자 읽기에도, 누군가에게 읽어주기에도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신화와 영웅이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기 쉬운데 그 밖에도 전 세계에는 정말 셀 수 없는 신과 영웅들이 많다는 걸 새삼 알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친숙한 신과 영웅들, 유럽의 신과 종교와 기사들의 이야기, 아프리카 설화와 동물 우화들, 아메리카의 수많은 민족들과 문명들이 남긴 다양한 신화들, 우리나라가 속해있고 가장 넓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와 수많은 섬을 포함하고 있는 오세아니아의 신화까지 제목대로 정말 전 '세계의 신과 영웅들' 의 이야기가 골고루 이 책에 담겼다.
그리스 로마신화와 아시아의 신화는 나름대로 친숙했지만,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신화들은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다. 이야기를 가지고 온 거미 아난시와 노래를 잘하고 싶었던 아르마딜로, 사람을 괴롭히는 요괴 사시 페레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셋 다 처음 알게 된 이야기였고 특히나 이야기의 시작에 관한 설화인 거미 이야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인간들에게 도란도란 나눌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직접 신에게 찾아가는 현명한 거미 아난시 덕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만들어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잘 모르는 이야기가 제법 많아서 책의 내용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이 책이 더 재미있는 이유는 독특한 이야기 전달 방식과 유쾌하고 개성 있는 삽화들의 몫도 컸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위인전이나 인문학 책들의 설명 조의 글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을 때 굉장히 자연스러운 구어체의 서술을 기본으로 하고, 가끔은 등장인물들 간의 편지 혹은 인터뷰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길고 복잡한 설명은 단순하게 줄이고, 가끔은 과장된 표현이나 우스운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이야기들은 전해지는 신화의 핵심 내용과 인물들의 특징은 놓치지 않되 그림과 어우러지는 약간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꾸준히 유지해 간다. 그림들 역시 본문의 장면들을 상상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역할과 웃음 포인트 양쪽 모두를 맡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결같은 그림체의 미남미녀들에 모습(예를 들어 에로스와 푸시케)에도 웃음이 났고 이미 알고 있는 인물들의 색다른 버전(예를 들어 웨딩드레스를 입은 토르)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단단한 양장 표지를 열면 처음으로 보이는 속지에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다양하게 모여있는데, 아이들이 책의 독자라면 책을 다 읽은 후 그 캐릭터가 누구인지 맞춰보는 게임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