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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가끔 프레드릭 배크만은 마치 동화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현실적인 짧은 이야기를 쓰고 책으로 낸다. 내가 접하기로 첫 번째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었고, 두 번째가 이 책 <일생일대의 거래>였다. 본문 곳곳에 들어간 아기자기한 그림들도 글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렸다. 이 책의 시작과 마무리는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아들에게 남긴 일기 같은 메시지로 쓰여있다. "안녕, 아빠다."하고 평생 아들에게 편지 한번 보내본 적 없다는 듯 어색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는 생명과 죽음, 아들에 대한 애정을 주로 담았다.
너희 인간들은 항상 언제든 목숨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실제로 어떤 일이 수반되는지 알아차리기 전의 얘기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아빠로서 좋은 아빠가 되지는 못했던 한 남자,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찾아오는 한 여자를 목격하는 남자, 사신과 같은 일을 하지만 사신도 유령도 아닌 존재에게 아낌 받았던 특별한 남자. 일생을 사업가로 살았던 그 남자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말 그대로 '일생일대의 거래'에도 "인간은 생긴 대로 산다"(본문 중 92p)는 대담한 대답을 내어놓는다.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특별하고도 어려운 일이라, 이 책에서는 그 일 앞에서 머뭇거리다 도망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노라 고백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 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나는 솔직했기에 딱 한순간 머뭇거리다가 도망쳤다.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지. 그럴 때 우리 사이엔 늘 정적이 흐르잖니. 너는 바 카운터를 닦고 유리잔을 정리했고 나는 사랑이 담긴 네 손길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는 좋아하는 걸 만질 때면 항상 거기서 심장이 뛰고 있는 듯이 다루잖니. 너는 그 술집을 아꼈고 이 도시를 사랑했지.
잘 해내지 못했지만 아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늘 존재해왔기에 죽음 혹은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앞두고 가장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역시 가족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습관이나 작은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을 지켜보고 그 시간만큼의 애정을 가졌다고 느껴지곤 하는데 아들의 손길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눈길에서도 그런 애정이 드러났다. 이렇게 떠나기 직전에야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하는 후회를 남기는 게 인간이라 참 안타까웠다. 겁이 나거나, 혹은 여자의 말대로 아쉽고 슬픈 감정으로 마지막 한 발자국을 걸어야 하는 순간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대상은 실제로 표현하지 못했더라도 온 생을 다해 애정 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니 아버지와 아들 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애틋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게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