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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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리뷰에 영화와 소설의 줄거리 및 몇몇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주연 배우들의 아름다운 외모와 좋은 연기, 그보다 더 눈부셨던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풍경, 가장 크게 남았던 엘리오의 아버지가 남긴 명대사가 내 감상의 대부분이었다. 국내에서는 영화가 흥행하고 원작 소설 역시 인기를 얻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영화의 원작인 소설에 대해서는 첫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한 걸작이라는 칭찬이 참 많았다. 책을 읽기 전 영화만으로는 이 부분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는데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알겠다. 엘리오의 서술로 진행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 그도 날 좋아한다 확신에 차 으쓱해지기도 하고, 냉정한 시선 한 번에 내가 뭘 잘못했나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수많은 '불'과 '황홀감'을 맛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자신의 감정에 어쩔 줄 모르는 엘리오의 모습은 누구나 겪는 첫사랑에 너무도 깊숙이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몽땅 다 그 사랑이란 것의 시작이라고들 하니까. 그래서 조금은 우습기도, 귀엽기도, 부럽기도 했다.

내가 푹 빠지면 상대방도 푹 빠진다는 법칙이 어딘가에 있다. Amor ch'a unll'amato amar perdona,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지옥> 편에서 프란체스카는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자. 나는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 본문 중 44p )

엘리오네 가족은 늘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별장에서 여름과 겨울을 보내는데 매년 여름 언어학자인 아버지가 젊은 학자들을 초빙해 손님으로 머물게 했다. 17살의 엘리오는 그렇게 손님으로 찾아온 24살의 올리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 추파를 보내고 낙심하고 두근거리기를 반복하다 결국 몸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올리버가 엘리오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만 빼면 완벽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불타오르는데, 올리버가 제안한 로마행을 엘리오가 수락하고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엘리오의 마음속에서 언제든 올리버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 장소와 장면을 만들게 된다.

나는 곡의 어느 부분이 그를 동요시켰는지 처음으로 정확하게 알았고, 매번 그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곡을 연주했다. 정말로 그에게 헌정하는 곡이었으니까. 내 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무언가의 표시였다. 헤아리기 어렵지 않은 그것은 나를 긴 카덴차(끝부분에서 연주자의 기교를 보여 주는 화려한 솔로 파트- 옮긴이)로 내몰았다. 오직 그를 위해서.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세월이 흘러 그가 여전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가슴 아프기를 바랐다. 그보다는 언젠가 그의 책을 살펴보던 누군가가 이 작은 <아르망스>를 발견하고 1980년대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누가 침묵 속에서 쓴 글인지 물어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때 그가 울컥 슬픔을 느끼거나 후회보다는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 본문 중 22p , 136-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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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는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냐는 올리버의 질문에 교수 아버지를 둔 덕이라 대답하는데, 그 점을 빼더라도 그는 타고나길 자신만의 지성과 감성을 지닌 특출난 아이로 보였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부터 엘리오는 매년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음악을 다른 작곡가의 스타일로 혹은 자기식대로 편곡하거나, 일기를 남기고 글을 썼다. 올리버가 오고 난후 두 사람이 교류하는 과정에서도 음악과 글은 좋은 매개가 되어준다. 올리버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거나 그에게 느끼는 감정 등을 일기로 쓰고 책에 짧은 메시지를 남겨 선물하기도 한다. 일기나 짧은 글의 내용은 본문에도 가끔씩 등장하곤 하는데 단순히 그때의 기록이라는 의미보다 나중에 그 글을 읽을 때의 시기, 상황, 읽을 사람 등을 상상하고 그 소망을 담아 글을 쓰는 방법에 감탄했다. 올리버에게 선물한 <아르망스>에 쓰인 글에서도 그랬고, 글은 물론 가끔은 소리쳐 입 밖으로 내뱉는 것으로 말의 생명을 더해주는 그 방식도 그저 놀라웠다. 이런 엘리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기에 별장에서 한 여름을 보낸 17살 소년의 일기와도 같은 이 글이 전혀 지루하거나 시시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을 되살려서) 영화와 책의 다른 점들을 꼽아봤다. 첫 번째로 영화에선 전화를 통해 전달된 이별 통보가 책 속에선 엘리오의 방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 채 이루어진다. 영화 속 벽난로 앞에서 울렁이던 눈동자로 그를 보내던 엘리오의 마음은 책에서는 생각보다 더 담담히 그리고 서서히 그 이별을 받아들인다. 또 영화와 달리 책에서는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난 너무나도 좋았다. 마지막 문장 말고도 책 곳곳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의외로 영화에선 보다 직접적이었기에 더 와닿았던 새뮤얼 펄먼의 대사는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아쉬웠다. 물론 그 의미와 진심 어린 조언이 주는 감동은 여전했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좋았던 문장을 하나 첨부하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늦은 오후 마팔다는 집 안에 할 일이 없으면 그에게 바구니를 들려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부끄러움에 낯이 붉어진 살구를 따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농담을 던진 뒤 살구 한 알을 따서 그녀에게 물었다. "부끄러움에 낯이 붉어진 게 맞나요?" 마팔다는 아니라고, 그건 너무 어리다고, 어릴 때는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성숙하면서 느끼는 거라고 대답했다.

( 본문 중 49-5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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