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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ㅣ 아르테 오리지널 23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시체를 묻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묻으려 하는 시체는 3시간 전에 죽은 그녀의 남편이다. 누가 그녀의 남편을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그 시체를 유기하려는 자는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다소 차분하고 세세한 데다 남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녀의 서술은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보여주고 그 결말을 맞이하기까지의 과거를 풀어내는 방법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흔한 구성이지만, 작가의 필력과 이야기 진행의 완급조절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신혼여행을 가 우연히 발견한 캐리어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돈과 다이아몬드를 가지기로 마음먹은 에린과 마크. 그들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고 그 가방 안의 물건들을 영국으로 가져와 처분하는 과정이 이 이야기의 주요 줄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에린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본문은 그 주요 줄거리 외에 그녀가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이야기(교도소에서 출소를 앞둔 세 사람을 출소 전부터 그 이후까지를 관찰, 인터뷰하는 내용)를 번갈아 들려준다. 초조한 마음으로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척 굴면서 돈과 보석에 관한 처리를 진행하는 이야기는 스릴러에 걸맞은 재미도 주지만 그 과정 자체는 조금 뻔한 면도 있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들어가는 에린의 다큐멘터리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의 완급조절을 해주는 동시에 두 이야기가 나중에 어떻게 합쳐질 것인지 호기심을 당겨주는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크와의 관계와 돈에 관해 집중한 본 이야기보다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세 인물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저마다 제각각이면서 출소 후 '새로 시작할 인생'을 상상한다는 점에서 에린과 공통점이 있는 게 재미있었다.
내 말은, 나를 보라는 것이다. 9일 만에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는 거짓말쟁이이자 도둑이 되었다. 앞으로 5년 후에 내가 어디 있을지, 어떤 사람으로 변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감옥에 들어가 있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양의 책을 몰아치듯 다 읽고 나서 천천히 다시 책을 훑어보고 메모한 페이지를 다시 눈여겨보자 책 전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뉘앙스가 있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인용된 장 폴 사르트르의 <닫힌 방> 속 한 문장 '내가 미소 지으면, 그 미소가 당신의 눈동자 속으로 잠겨들 텐데, 그게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는 하늘만이 아시겠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홀리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 후 그녀의 방을 보면서 에린이 한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것인데 에린과 마크가 느닷없이 돈과 보석을 발견해버린 것처럼 이 스릴러 속 주인공들이 또 언제 어떤 격변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준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이 스릴러, 미스터리 같은 장르의 책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작가는 배우로도 활동한 적 있는 캐서린 스테드먼인데 내년에도 출간 예정인 책이 있다고 하니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이미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에린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책이 과연 어떤 식으로 영화화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