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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블루스
마이클 푸어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한 사람의 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누가 그랬던가,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 혼자서 9,995권의 책을 쓴 사람이 있다. <환생 블루스>의 주인공 마일로는 수많은 환생을 거쳐 그 환생의 수만큼의 책을 축척해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권의 종합본이나 요약본의 장점은 역시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마찬가지로 각각의 생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소 정신 산만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책안의 세계에서 한 영혼이 환생을 거듭하는 이유는 이상적인, 완벽한 생을 살아냄으로써 우주(오버소울)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 마일로는 9,995번의 생을 살고서도 완벽한 생이란 것을 이루어 내지 못한 모질이일지도 모른다. (마일로는 '오랫동안 완벽함에 저항'해 온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
"대체 누가 완벽한 삶이 이상적이라고 한 거야? " 그가 물었다.
"무슨 뜻이야?"
"내가 나의 불완전한 삶을 좋아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마일로가 물었다.
(본문 중 79p)
과연 어떤 삶을 '완벽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 쓰인 완벽한 삶은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관점인 것 같아 사실 그리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마일로가 귀뚜라미로 태어난 생에서 자신을 사로잡아 나무 새장에 가둔 인간 여자아이를 위해 귀뚤귀뚤 울어주고 소녀의 사랑을 얻어낸 생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라 평가되어 그는 구원을 받았다. 이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생이라면 조금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수지)이 그에게 보여준 완벽한 생의 한 가지 예는 가축으로 태어나 제 발로 아주 가난한 가족에게 찾아가 식량이 되어주는 삶이었기에 조금 혼란이 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아무 계산 없이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 완벽한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두 이야기에서 희생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였고, 그 어떤 존재의 희생을 통해 행복이나 사랑 등 그에 준하는 것을 얻는 존재는 인간이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엔 왠지 찜찜했다.
"완벽함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
"내게도 사랑이 있어!" 마일로가 항변했다. "당신과 사랑에 빠졌잖아."
"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게 항상 같은 건 아니야. " 수지가 말했다.
"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간적인 거라고. 일종의 화학작용이야. '사랑'은 우주적이지. 나도 역시 당신을 사랑해." (본문 중 102p)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두 가지 궁금증이 계속됐다. 마일로와 수지의 러브스토리는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일로는 1만 번의 생을 다 써버리기 전에 완벽함에 다다를 수 있을까? 마일로가 거쳐간 여러 가지 생의 이야기나 잠시 사후세계에서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어가면서도 이 두 가지 질문에 대답이 궁금해 계속 책장을 넘긴 것 같다. 이미 완벽에 대한 정의나 그에 다다르기 위한 룰이 정해진 세상에서 그에 구애받지 않고 마이웨이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사랑하며,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려 고군분투하는 마일로는 참 독특한 존재였다. 가벼운 러브 판타지를 생각하고 읽었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보단 좀 더 방대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한 책이었다.
두께는 있지만 이야기는 술술 읽히는 편이고 다양한 마일로의 생에 경악하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며 그럭저럭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책 속 세계의 설정들을 나에게 빗대어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한 영혼이 완벽함을 이루어내 오버소울의 조각이 되기까지 만 번의 삶이 가능하다면, 과연 지금 내 영혼은 몇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걸까. 아주 망쳐버린 생이 아닌 이상은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날지를 본인 스스로가 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완벽한 생이란 것을 바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걸까. 이전 생은 지금에 가까운 현재였을까 아니면 과거? 혹은 미래? 나라면 다음 생에서 어떻게 태어나면 좋을까. 이번 생이 끝나고 내가 얻게 될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등등. <환생 블루스>는 죽음과 사후세계, 그리고 환생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