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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창가의 토토 ㅣ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고향옥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엔가 헌책방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어 표지 그림에 정이 들었다 느낄 무렵 결국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처음엔 빛바랜 표지 속 어린아이의 순수한 표정에 끌렸는데, 책을 열어보니 삽화도 상당량 있어서 더 좋았고 내용도 인상적이라 꽤 오랫동안 좋아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그 삽화를 그린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을 대폭 수록한 일러스트판 창가의 토토가 출간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림을 늘리고 텍스트를 축약한 게 특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일단 컬러로 수록된 수채화 작품들이 너무너무 예뻤고 실제로 본문의 세세한 묘사나 해설이 약간씩 생략되어있다는 걸 느꼈다. 본문의 해설 부분이 마치 동화처럼 존대어로 쓰여있는 것도 이전에 읽었던 책과 차이가 있었다. 책을 사고 나서 그림을 보려고 자꾸만 이 책을 들춰보았지만 한번 읽었던 책이라는 핑계로 정작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글과 그림을 모두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차분히 이 책을 읽었다.

내가 맨 처음 이 책을 읽고 주변에 마구 추천해주었을 때 누구는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만 들어있는 책이 아니냐고 물었다. 첫 장면이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하는 장면이고 전시상황에 하늘엔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학교가 불타던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는 이야기가 과연 아름다운 이야기만 들어있을까. 하지만 그 말에 순간 반박을 하지 못했던 건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이야기 중간중간 잘 드러나있음에도 주인공인 토토의 마음과 행동이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큼 순수하고 이상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처음 드는 생각은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배경으로 썼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었다. 정말 이런 학교와 이런 선생님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이 아니게 된 다음에야 느낀 것들 중 하나가,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 나 자신도 모르던 시절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행운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가끔은 엇나간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넌 사실 착한 아이란 걸 알고 있단다'하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바라본다면 그게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일까. 아주 어릴 때 우리는 누구나 겁 없이 행동하고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엉뚱한 짓을 곧잘 하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사회화, 혹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개성과 자유로운 생각을 깎아내고 그 대신 겁이란 걸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널 말썽꾸러기라고 생각할 만한 점이 여러 가지 있긴 하지. 하지만 넌 성격도 좋고 착한 아이란 걸 선생님은 잘 알고 있단다."
이 말은 앞으로 토토가 살아갈 방향을 가르쳐 주는 말이었어요.
그 정도로 토토에게는 소중한 말이었답니다. (본문 중 158p)
책 속에서 학교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배웠던 가르침과 즐거운 추억은 토토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실제로 그 기억을 양분 삼아 잘 자라난 토토는 배우가 되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의 구호를 돕는 선량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이야기의 끝 맛이 그리 쓰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토대가 되어준 어릴 때의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마냥 그런 토토가 부러웠다면 지금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자라날 누군가의 그 행복한 기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