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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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식물의 독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진 독이 사람에게 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는 이런 관계성에 대해서 꽤 자주 이야기한다. 문학에 흔히 등장하는 '선과 악'의 관계 대신 이 이야기는 '약과 독'의 관계를 선택했다. 선과 악 혹은 생과 사처럼 대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교묘히 섞이고 이어진 둘의 복잡한 관계성과 각각에 대한 기준, 상징성을 반복해서 제시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의미를 흔들어 놓는다.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먹고 마시고 접촉하는 모든 것은 사실 독은 가지고 있으며 어쩌면 사람도 하나의 독과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독 = 악'이라는 통념 하에 약으로 그 독을 해독하려고 애쓰지만 그 약 역시 내성과 중독의 길을 거쳐 또 다른 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맨 처음 내가 떠올렸던 이야기처럼 사실 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래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똑같은 무언가는 '독'이 될 수도 '약' 될 수도 있다. 

 

독은 위험하지만 무척 흥미롭거든. 사람들이 독을 가지고 온갖 일을 벌이는 것도 그래서지. 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이야.      -본문 중 97p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본문 중 100p

 

다 읽고 난 후 첫 감상은 독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식물과 동물이 가진 독은 물론 그에 얽힌 유래나 신화들, 그리고 역사나 현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독살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잘 끌고 나가지 못했다면 독에 대한 모든 속설과 진실들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등장인물들과 구성 자체는 소설의 특징을 잘 잡고 있어서 수많은 독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

사람은 가장 순수한 상태로 태어나서 점차 주변의 것들을 흡수하며 성장하다 이윽고 체내에 나쁜 것들까지 흡수해 쌓아놓고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 우리가 흡수하는 모든 것들 중에 '독'이라 부를 만한 것들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주인공은 태어나기 전부터 독과 접촉하고, 자라면서도 독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거나 매혹당하기도 하며 내내 독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 몽구보다 그 외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오히려 독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보이는 편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독과 중독에 대한 두려움, 매혹, 도취, 환멸 등에 대한 감각과 경험으로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안 받으며 관계를 시작한다.

독은 쉬이 주변에 감염을 일으키고 자신보다 더 센 독을 만나면 한번 앓고 난 후 더 강력해진다. 마치 독 그 자체였던 몽구는 만성 두통을 비롯해 자신의 특이점을 인지하고 그 특이점이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하지만 자라면서 점차 그것들은 숨기는데 능숙해지고 타인의 시선에서 점차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변화한다. 그에 반해 몽구의 독에 감염된 것처럼 몽구로 인해 범상치 않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주변 인물들은 뒤로 갈수록 더 불안정해지고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전반부에 등장했다 사라졌던 인물들을 포함해 모든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독을 두려워하면서도 독에 이끌리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본문 중 211p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독의 '꽃'은 무엇일까. 제목부터 시작해 내용의 곳곳에 쉬지 않고 등장하는 '독'이란 심상치 않은 단어가 품은 '꽃'은 과연 무엇일까. 그 의미가 독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주인공이 품은 '사랑'이라는 로맨스의 요소일지 읽으면서도 내내 궁금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은 독을 두려워하면서도 심취하거나 그 영향에 휘둘리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반해, 여성 인물들은 독의 해소에 초점이 맞춰진다. 몽구의 어머니와 영지는 적극적으로 몽구의 해독에 애를 쓴 사람이었고, 자경은 처음으로 몽구를 끌어안고 교감한 인물이자 자신의 독(=몸의 허약함과 정신적인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새로운 독을 이용한 인물이다. 몽구는 자경과의 기억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그녀와의 재회에 긴장하기도 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이 꽃과 같이 피어나는 결말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다 읽고 난후 단순히 꽃을 사랑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기엔 좀 찜찜했다.

 

 

개인적으로는 독에 만연한 세상에서 특히나 강력한 독으로 태어난 몽구가 자경과의 재회와 더불어 몰아치듯 발생한 여러 상황들을 겪으면서, 평생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시달리게 한 독에 대해 여러 의미를 깨닫고 각성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은 화려하지만 성장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각성과 동시에 가까워진 죽음이 모든 성장과 고초를 겪은 후 피어난 독의 꽃을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허무하게도 제목의 의미는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 해설이 되어있었다. 내 생각과 맞는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여러 가지 포인트를 독자로서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고민했다는 점이 조금 뿌듯했다. ​발랄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만큼 아주 무겁거나 읽고 나서 마음이 불편한 책도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의 매력에 빠지기도 하는 것처럼 '독의 꽃'은 위험하고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뭔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책을 읽는 데 쓴 시간만큼 읽고 나서 정리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고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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