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바람은 소박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논쟁이 중요한 것은 논쟁을 통해 쟁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동안 진행된 논쟁들이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듯, 생산적인 논쟁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를 향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앞으로 논쟁들이 더욱 활기차게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프롤로그 중, 6-7p)
근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알고 있었던 내용부터 시작해 내가 태어난 시기 전후의 조금 더 가까운 현대사, 그리고 내가 실제로 목격하고 현장에서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바로 작년까지의 몇몇 논쟁들을 순서대로 바라보는 건 꽤 드물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과거의 논쟁을 하나하나 다루거나 이야기한 적은 가끔 있지만 이렇게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짚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각 논쟁의 이야기를 길지 않게 풀어내는데 시간 순서대로 다른 논쟁이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할까,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고 할까. 역사 이야기는 딱딱하다는 편견이 있었는지 혹시 읽기에 어려울까 걱정했던 게 다 쓸모없는 걱정이란 걸 금방 알게 되었다.
각 논쟁에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주요 주장이나 입장이 있다면 항상 중도적인 입장도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 어떤 토론이나 논쟁에 있어 항상 중도적인 입장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중도적'이란 것이 이쪽도 어느 정도 맞고 저쪽도 어느 정도 맞아-하고 맞장구치는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 아니라, 두 주장 사이의 어떤 식으로 연결고리가 있는지 인과관계가 있다면 그를 명확히 파악하고 증명해내는 것 등의 구체적인 근거와 주장이 맞물려진 제3의 주장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대부분의 중도적인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라지는 이유는 그 주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근거나 관계 파악 등의 자세한 논쟁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서 더 먼 논쟁일수록 입장과 논쟁의 쟁점이 명확한 데 반해 지금에 더 가까운 논쟁일수록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해설과 다양한 관점이 많이 드러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논쟁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찬반 토론'식의 풀이를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관점의 주장들을 훑어보고 글쓴이의 해석을 말해주는 점이 이 글을 통해 어떤 주장을 피력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다양한 논문과 저작들이 인용되고 한번 읽어서 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논쟁의 제목들을 봤을 때 다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한 큰 논쟁들을 다루고 있어서 가까운 현대사에 있어 알고 있어야 할 정보들을 많이 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