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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단 하나의 히트작을 가진 작가 길 콜먼과 어느 날 바다에서 사라진 그의 아내 잉그리드. 아내의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모두가 바다에 휩쓸려 그녀가 죽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후 길 콜먼은 비 오는 날 서점에서 창밖에 서 있는 자신의 아내를 발견한다. 애타게 뒤쫓아가지만 그녀를 잡지 못하고 해변 위로 이어진 산책로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죽은 사람을 발견하는 미스터리한 사건, 그리고 그의 남편이자 목격자의 사고까지 갑작스럽고 긴박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 그 후 이야기는 아내가 그의 서재에 남겨둔 편지 속 과거와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돌보는 두 딸의 현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길에게
새벽 4시인데 잠이 오지 않아요. 이 노란색 노트를 발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어요. 실제로는 하지 못한 말들,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긴 편지를 말이에요. 당신은 내가 상상하거나 꿈꾸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할 내용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는 시선이에요. 내 진실이에요. (본문 중 25p)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이야기를 담고 있는 편지 속 그들은 서로를 신경 쓰고 유혹하는 연애 초기의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있어서, 편지 말미에 항상 적혀있는 '우리에게 돌아와요, 길' 같은 남자의 부재를 알리는 마지막 글귀가 주는 이질감이 상당했다. 실제로 사라진 것은 여자인데 왜 편지 속에서는 그 여자가 남편의 부재를 힘들어하고 있는 걸까. 교수와 학생, 20살의 나이 차라는 장애를 넘어서는 대 연애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하는 기대감도 잠시, 편지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기분은 마치 잉그리드의 삶처럼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렸다.
1992년 6월 2일에서 1992년 7월 2일까지 한 달에 걸쳐 쓰인 여러 편의 편지. 스무 살 이후의 생을 돌아보는데 한 달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었을까. 오로지 그녀의 시선으로 쓰인 그 진실은 다소 경악스럽고 좋지 못한 쪽으로의 반전을 거듭했다. 자신의 힘듦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있던 일들을 풀어내는 느낌이라 편지 속 내용들은 충격적이지만 왠지 머리가 차가워져 차분하게 글을 읽어내리게 한다. 편지 속 그녀가 울지 않는 것 같아서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종이 겉표지를 벗겨내면 아무 그림도 그려있지 않은 진하고 어두운 푸른색의 표지가 보인다. 차가운 겨울밤바다의 색처럼 차분하고 음울한, 무언가를 끌어들이는 듯한 짙은 색.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 난 겉표지를 벗기고 그 안의 색을 봤을 때, 이 책의 감상과 무척 비슷한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를 찾을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죽음. 그에 대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그 사람이 살아있으리라 상상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게 나을까, 확실한 현실을 알 수 있도록 시체를 발견하길 바라게 될까. 이야기 속 인물들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화를 하곤 한다. 아마 이 소설은 이러한 대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 해변으로 떨어지는 동안 길 콜먼이 상상했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장면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꽤 많은 것이 겹친다. 내 생각에 길은 그녀의 편지를 봤던 것 같지만 마지막 편지까지는 찾지 못한 것 같다.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책 속의 단서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속에 등장하는 책의 제목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를. 다 읽고 난 후 기분은 우울했지만 구성은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과 내용에서 작가가 하고픈 말은 과연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