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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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었는데 대여섯 권짜리 만화책을 완결까지 한 번에 읽어낸 것 같다. 라이트노블이라는 장르 탓일까. 미소녀와 어딘지 평범한 남학생이 주인공이며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모에 대한 묘사가 그리 자세한 것도 아닌데, 인물들의 외모나 소설 속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만화 속 페이지로 변환되는 기분이다. '사자'를 구원하는 사신의 이야기를 담은 SF 적인 소설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주인공들의 대사량이 많아(주로 말장난하거나 까부는 내용)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도 절로 빨라진다. 367페이지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읽어내린 책이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라이트노블이라고 그 내용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생에 미련을 갖고 떠도는 존재가 '사자'다. 그리고 그런 사자의 미련을 해소해주어 그들을 구원하는 존재는 사신이다. 어제까지도 평범한 남학생에 불과했던 사쿠라 신지는 까불거리지만 미인 동급생인 하나모리 유키에게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의받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급 300엔의 열악한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6개월간 지속하게 된 사쿠라는 하나모리의 파트너가 되어 함께 여러 명의 사자를 만나게 된다. 각 사자는 가족 때문에 고민한다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제각기 그 사연이 다르고 사신을 대하는 태도 또한 제각기다.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 잃었더라도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분명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이다.     - 본문 중 334, 5p

 

내가 초등학생일 때 설문지를 집에 가져왔다고 한다. 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부모님에게 묻는 설문지였다. 엄마는 그 종이에 내가 행복하고, 스스로 행복하다는 걸 알고, 행복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다고 했다. 그 설문지는 엄마의 마음에도 꽤 깊이 남았는지 종종 둘이 산책을 나가면 그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이 책에서 엄마가 설문지에 적었다는 그 내용과 매우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고 기분이 참 묘해졌다.

책 속의 사자들은 죽기 이전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행복한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물론 그 행복했던 기억 한 조각을 붙들고 살기에 삶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뜨리고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행복과 희망이란 조각은 아주 작아도 그 영향력을 크게 떨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과 행복, 그리고 기억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사자가 미련을 해소하기 위해 갖게 되는 능력과 사후 시간이라는 특수한 요소들은 그들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 시간 동안 사자와 관련되어 벌어진 일 자체가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신 아르바이트는 6개월로 한정되며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그동안의 기억과 모든 흔적들이 사라진다.

 

 

아무튼 우리는 하루하루를 최대한 만끽했다.

이제 곧 끝이 오겠지만 그게 뭐 어쨌느냐고 외치듯이. - 본문 중 ​296p

 

사람들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한다. 사실 영원한 것은 거의 없는데도. 그래서 하나모리가 이야기한 '투명한 책'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보지 못하는 특별한 공간에 잠시 봉인해두는 것이라는 것. 이렇게 진실은 알 수 없는 사소한 이야기에 잠시 위안 받고 그저 즐겁게 현재를 만끽하는 것. 그게 이번 인생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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