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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출간 전 연재를 보았는데, 몇 장의 이미지와 함께 쓰인 글이 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무서웠다. 사실 호러소설이나 공포소설을 좋아거나 찾아읽는 스타일은 아닌 데다가 강렬한 첫인상이 있어서인지, 밤보다는 낮에 틈이 나는 대로 이 책을 읽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보기왕'이란 요괴는 밤에만 나오는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었고, 항상 '먼 곳'에 존재하지만 가까이 오게 되면 누구도 쉽사리 대항하거나 막을 수 없는 강력한 것으로 표현된다. 보기왕은 한번 점찍은 대상을 끈질기게 찾아내고 반복해서 찾아와 숨통을 조인다. 과거에 비해 점점 머리를 쓸 수 있게 되는 등의 발전을 거쳐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간다.
'미에 현 K 시에 전해 내려오는 요괴인 보기왕은 부기만과 통하는데 아마 사절단의 몇몇 사람으로부터 부기만 전승이 이어진 것 같다.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가져왔지만 아득한 서쪽 세계에서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 요괴도 가져온 것이다......' - 본문 중 제1장, 77p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사람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집에서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다. 그러면 유족은 죽은 사람 탓으로 돌린다. 즉, '영혼의 소행'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 사고나 사건 현장도 마찬가지다. 요괴나 유령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해석을 제3자가 진실로 받아들여 확대시키고, 그것이 몇 번씩 반복되고 거듭되어서 태어나곤 한다. - 본문 중 제3장, 328p
이야기는 총 3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마다 서술자가 바뀐다. 보기왕 자체가 주는 두려움도 책 전체의 분위기를 잡는데 한몫하지만 각 장의 서술자, 즉 보기왕에게 쫓기거나 반대로 그 존재를 찾아내려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주는 충격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1장 방문자>는 다하라 히데키의 시점으로, 히데키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갔다가 할아버지를 찾아온 보기왕과 마주친다. 문을 열지 않음으로써 그 순간은 무마되고, 그는 무사히 어른으로 자라 가나라는 여성을 아내로 맞는다. 보기왕의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한 히데키의 고군분투가 1장의 주요 내용이라면, <제2장 소유자>는 그의 아내 가나의 시점으로 1장에서 히데키의 시선으로 풀어낸 다양한 일화들의 전혀 다른 단면들을 보여준다. 1장과 2장 사이의 간극이 주는 충격에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도 제목처럼 또 '보기왕이 온다'. 1장에서는 히데키가 느끼는 두려움과 더불어 미묘하게 거슬리는 히데키 시점의 서술들이 글의 긴장감을 높여준다면, 2장에서는 앞선 이야기에서 마무리된 듯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다시금 반복되면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1장과 2장의 충격적인 결말들은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제3장 제삼자>로 이어진다. 3장의 서술자는 앞선 이야기에서 다하라 가족의 조력자로 등장했던 인물들 중, 다양한 오컬트 정보를 찾아 취재하고 집필하는 오컬트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노자키란 인물이다. 그는 보기왕이란 존재에 흥미를 갖고 정보를 수집하지만, 적극적으로 다하라 가족을 보기왕에게서 구해내려 하거나 직접 주술과 퇴마를 하는 등의 인물은 아니다. 다만 그의 연인인 마코토의 뜻을 따라 그녀와 그녀의 언니를 보조하며 보기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가설을 채워나간다.
오컬트적인 존재의 탄생과 전승 등 민속학적인 이야기도 다양한 인물들의 입과 현존하는 지역 등을 보여주며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 '보기왕'이라는 요괴 혹은 괴물, 그리고 그 존재의 타깃이 된 '다하라 가족'과 보기왕에 대항하려는 '퇴마사'(노자키, 마코토, 마코토의 언니 등등)로 대표되는 세 집단의 구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이야기의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보기왕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격투신이 각 장마다 1회 이상 있는데 그 장면들도 굉장히 두근두근하며 읽었다. 1장과 2장의 결말이 공포로 끝난다면, 마지막 3장의 결말은 불안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결말이라 읽고 나서도 묘한 긴장감이 남았다.(책과 함께 온 부적 모양의 책갈피를 왠지 어디에든 붙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ㅋㅋ) 이런 장르의 책은 꽤 오랜만에 읽었는데 특유의 긴장과 불안을 즐기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