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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月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0월
평점 :
각 달의 날자 수만큼의 시와 30여 개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고 예쁜 책.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라는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책에 관심은 있었지만, 10월에야 처음으로 이 시리즈의 책을 만났다. 한 달마다 한 명의 화가가 지정되어 있고, 그 그림 작품 옆에 다양한 국내외 시인들의 시가 함께 놓여있다. 10월의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다. 이 시리즈의 모든 책은 대표저자로 윤동주를 내놓았는데, 윤동주 외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국내 시인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간간이 일본의 하이쿠 시인들과 서양 시인들의 작품도 보인다. 10월의 경우 서양 시가 릴케의 <가을>이란 작품 단 하나였는데 한글로 번역된 시 뒷장에 원문(아마도 독일어)이 함께 실려있어서 특히 인상에 남았다. 모든 외국 시는 이처럼 원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글의 길이가 짧다 보니 인상이 조금 약하긴 했는데 확인해보니 일본 하이쿠의 원문도 번역된 시 아래에 함께 첨부하고 있었다.)
10월 1일의 시와 그림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2일의 시와 그림은 윤동주의 <자화상>과 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With Bandageed Ear, 1889)>. 서로 연관이 없을 두 예술가의 작품들이 오묘하게 매칭된다. 친숙한 예술가들의 워낙 유명하고 제목도 알만한 작품들이어서 단순한 듯하면서도 그럴싸한 이 매칭에 살짝 감탄해버렸다. 책에 실린 모든 그림을 알지는 못하지만 책의 맨 뒤에 그림의 도록이 있어 작품명을 확인할 수 있어서 시를 읽고 나면 자꾸만 그림의 제목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본문에 실린 그림 바로 아래 제목이나 출처가 쓰여있지 않은 점이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쓰여있다면 책의 마지막에 모든 그림을 모아 한 번에 볼 수 있는 도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구성이라고 스스로 납득해버렸다.
시리즈가 출간된 지 꽤 된 시점에 뒷북일지 모르지만, 10달의 책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한 독자로서 탄생석, 탄생화같이 '탄생시'라는 개념을 적용한 게 참신하다고 느꼈다. 사람은 '소유욕'이란 게 있어서인지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탄생석이나 탄생화일지라도 '자신의 것'이라는 개념이 붙으면 더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는 경향이 있다. 이 탄생시라는 것도 그 정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날짜마다 시가 정해져 있다-라고 하면 누구라도 '오늘의 시는 무엇일까?' 혹은 '내 생일의 시는 뭘까?' 하고 궁금해져서 책을 한 번씩 뒤적여보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는 아직 출간되지 않는 12월의 책에 들어있을 내 탄생시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도 좋고, 외우기 쉬운 하이쿠여도 좋을 것 같다. 시와 함께 있을 파트너 같은 그림 역시 나의 '탄생 명화'라고 이름 붙여도 되려나.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느낄 수 있는 10월이라 백석의 <추야일경>, 릴케의 <가을>, 노천명의 <만추> 등등 제목만 보아도 '가을'에 관한 시가 참 많았다. 달에 관한 시도 꽤나 있었는데, 이 책의 표제인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는 이상화의 <달밤-도회(都會)>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 안에서 계절을 찾아보는 게 왠지 재미있었다. 특히 하이쿠는 '계절어'라는 개념이 있어서 글 안에서 쉽게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나 외국 시의 경우에도 하이쿠처럼 꼭 집어 계절어라고 말하진 않지만 그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나 소재들이 있다. '달'도 그런 공통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소재가 아닐까.
이 전 달의 책들도 그렇고 이 시화집 안에 하이쿠가 몇몇 포함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혹시 내가 좋아하는 하이쿠 시인들의 시도 있을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이번 달엔 잇사나 시키의 작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자유로운 현대시에 비해 하이쿠는 글자 수의 제한이나 계절어를 꼭 포함시키는 등의 간단하지만 명확한 룰이 있어서 읽을 때도 그 특징들을 잡아내거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책에 수록된 교시의 하이쿠를 소개한다. 10월 7일의 시다.

그가 한마디 내가 한마디 가을은 깊어가고 - 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