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무슨 꽃, 아무개 꽃... 어디서 날아 온 씨로 이렇게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니. 이렇게 씨꺼
먼 아스팔트 밑에서 뭘 먹고 자라는 거니. 벌도 나비도 너를 찾지 않을 때 넌 무슨 외로움을 얼마나 견딜 수 있기에 살아있는거니.
잡초다. 화원마다 '희귀종 야생화'라는 이름표 밑에 뽑혀져 나가는 그래도 죽지 않는 잡초다. 생명이고 불사이며 모든 숲의 근원이다. 민둥산에 엉기어 자라는 풀포기가 없다면 나무는 떡잎조차 자랄 수 없을 것이다.
잡아 먹히지 않으면, 뺏지 않으면 설 땅이 없다. 한 톨의 흙이라도 실뿌리를 거둘 수 있으면 거기다 살아 갈 땅이라 믿으며 줄기를 뻗고 잎을 피우기 위해 기운을 다 모은다. 사람의 손만 닿지 않으면 땅을 기어서라도 햇빛 한 줌을 얻기위해 해바라기를 하기 위해 목을 빼어 든다. 살아지면 사는데로 그렇게 얼기설기 맞춤으로 생명을 다하고 종족번식의 명을 위해 씨를 뿌린다. 더 넓은 땅에 더 깊은 곳에 사람의 손 아귀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뿌려진다.
보도 블럭 틈으로 바랜 노란빛으로 보랏빛으로 눈시리게 하얀 꽃잎이 바람보다 가벼이 붙는다. 항아리 장독도 깨트린다는 꽃샘추위에도 보잘 것 없는 들꽃은 자신을 보호하고 필 줄 아는 영악함이 있다. 그 독함이 너무나 절실하기에 눈길이 간다. 잘발라버린 시멘트 담벼락 아래도 새로지은 구청 화단에도 KTX가 지나는 철길에도 바닥에 자잘하게 피는 꽃이 한 숨을 트이게 한다. 너는 살아서 좋고 난 널 보고 살 수 있어서 좋다. 내게 마당이 있다면 손대지 않고 잡초가 무성하게 하리라 생각도 해본다. 아니 마당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아무 동산이나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붙여주고 볼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봐두고 싶다. 언제 어느 때 산림청 공무원의 손에 제초제병 들려 올라 올지 아무도 모르니...
아는 이름도 모르는 너고 모르는 이름도 너다. 보릿고개 배고픔을 면한지 고작 몇년인데 우리 할머니 곯았던 배를 채워주던 너는 너만 사는게 아니라 누구도 살릴 수 있었다. 신작로를 내고 집채만한 트럭이 동으로 서로 다닐 째 물설고 땅설은 씨앗이 붙여 들어와도 넌 자리를 내주고 누구도 살리는 구나. 이제 양옥 이층으로 개간한 것이 아니, 더 높이 더 빨리 짓지 못하는게 한이 되고, 산을 더 뭉게고 개천을 더 매꿔야 하는 본성을 지닌 사람들이 돌아서면 자라는 너를 아주 못됐다 한다. 살리는 너를 죽이는 너라 한다.
풀뿌리, 잎사귀 모양 하나 하나 하나님의 섭리로 지어진 너는 사는 것을 위해 줄기차게 사는, 너는 이름이 뭐냐고 무릎 꿇고 불러보고 싶다. 이름이 지어진 구성진 가락조차 "살린다" 라는 의미를 가진 너는 이름이 뭐냐고 눈 맞추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