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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테이블
마이클 온다체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5월
평점 :
깊은 안개를 지나야 배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인용구절을 써 놓은 마이클 온다체의 마음은 어쩐지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렇게 될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듯이 들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혼란이며 원하지 않아도 어느 새 흔들리는 촛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를 수 도 있는 사실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는 유년 시절은 점점 더 많은 걸 얻게 되고 알게 되면서 진실과 현실 속에서의 좁은 길을 가게 된다.
오론세이에서의 3주간의 시간은 라마딘,마이클,캐시어스 세 소년에게 보호자(명분으로서만이라도)의 간섭 없이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그래서 더 집요하거나 흘려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라마딘의 약한 심장도 캐시어스의 반항적인 모험심도 마이클의 모든걸 보고 듣는 호기심이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비록 배가 영국에 도착하는 순간 석별의 정은 이미 배의 닻에 함께 깊은 바다에 수장시켰을 지라도 아마 서로 보이지 않아도 결국은 찾게 되는 텔레파시를 갖게 되었으니......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친구의 매듭에 달랑 몸뚱이를 무조건 내다 묶은 이 아이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할 때 어쩌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폭풍과 파도에 공격당하는 상황에 어찌나 가슴을 조렸던지 진짜 못말린다는 걱정의 소리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세 소년의 모험과 호기심의 극치는 공포마저 그냥 재미라니 어쩌랴 싶다.
또한 내가 상상하는 첫사랑의 달콤함과 무조건적인 미화의식은 마이클의 에밀리에 대한 그것과는 좀 달라서 실망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미 그 시절에 대한 희미함마저 없는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더 오로라 같은 환상을 좇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회의가 든다. 첫 사랑이란 안개 낀 바다를 헤매는 것과 같으니 안개가 걷히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세상이라는 바다 한 가운데에 표류하고 있다는 걸 황망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마이클과 다른 세 아이가 앉은 고양이 테이블은 세상의 주어가 아닌 사람들의 말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오히려 세상은 주어만이 아닌 다른 언어들로 배울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어린시절 스스로를 격랑의 바다 위에 가두었던 그 곳에는 많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그런 고립된 곳에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모험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이 깊으면 실천의지에 두려움이 먼저 생기는 법이다. 어떤때는 나도 오론세이호를 타고 여행할 시간이 있었다면 누구와 무엇을 해볼지 생각만 해도 다시 어려진 기분이다. 그러지 못할 지언정이라는 말이 지친 삶을 위로 할 때가 있듯이...
너무도 감사하게 뭉뜽그려져 잊혀진 과거의 잔상들이 명확히도 정리되는 문장들에 전율을 느끼며 흩어진 감상들을 정리하게 된다. 열한 살 때 오로지 내가 뭘 했었는지 아니면 색을 잃어버린 내 주위의 그림자들은 어느 곳에 있었는지 지나가는 바람에라도 기억이 가물거린다는 건 어른이 된 내가 기억해 내야 할 십대가 그 곳에 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