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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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대엔..

장치도 없고 소품도 없다


그저 줄곧 관객을 향하는 일방적이고 끊임없는 이야기만 있을뿐.. 

배우가 네명이라 하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진짜 네명이 있기나 한건지도 믿을수가 없다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어릿광대들아, 눈딱부리들아, 가련한 몰골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 오락실 사격장의 허수아비들아,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 


욕설연습을 빙자해 관객을 당황시키는것으로 극을 ..아니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줄곧 관객에게 설명하고 지시하고 또 설명하고 지시하고.. 그런데 자꾸만 빠져드는건 왜일까? 시키는 대로 자꾸 따라하고 싶어지면서 약간 언어의 최면에 걸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러분이 너로 바뀌며

극렬한 욕설로 채워진다. 


심한 욕설로(번역문이라 그런지 우리가 쓰는 찰진 욕설같지는 않고 정말 애써, 공들여 관객을 모독하는 느낌이랄까?) 


아아 그런데 어째서 이런 묘한 쾌감이..

심한 모욕을 당하는데 어째서..

나의 내면에 마조히스트의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얼핏 의미없는 중얼거림처럼 보였던 대사들은 사실 굉장히 날카롭고 철학적인 메시지들을 담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재생될 수 없습니다. 어떤 연극에서도시간은 반복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만회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불가항력적입니다. 시간은 상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현실입니다. 현실인 시간은 연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연기될수 없기 때문에 현실 역시 연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제거한 연극만이 연극입니다. 시간이 함께 상연되는 연극은 연극이 아닙니다. 시간과 무관한 연극만이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시간과 무관한 연극만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극입니다.  


얼핏 스치듯 연극제목으로 긴가민가 들어본듯했던 이 요상한 제목의 책이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대 작가의 작품인줄 몰랐다..

다시한번 나의 무식을 탓해본다. 


어쨌든 실험적이고 대단히 전위적인 작품이라는건 금방 알겠고

첫작품을 읽고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가인데


논란이 있다하니 다소 찜찜한 마음이 든다 

유고연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시켜 내전을 주도하고 인종청소를 자행한 밀로세비치를 옹호했다 하니..(피해자들이 노벨상 수상에 반발했다 한다) 


다만, 이 작품이나 작가와는 별개로.. 


위와 같은 논란과 관련하여 

스스로의 사상과 양심(오로지 자신의..)에 따라 표현하는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더욱이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 경우라면 더욱 그 기준이 엄격해야 하는건지

또 우리는 우리 양심에 따라 어디까지 그를 비난할수 있는지

비난하지 않는것 또한 우리 양심에 어긋나는건지 그렇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는 제각기 무엇이 허용된 것이고,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자신에게 금지된 것인지 스스로 알아내야 해

결코 금지된 것을 하지 않는데도 무도한 악당일수 있어,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데미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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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가끔 지하철에서 

모바일 앱을 통해 장기를 둔다.

몇년을 두어도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고

급수는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한다.

왜일까 생각해본다

볼것도 없이 첫째 문제는 내 두뇌에 있겠지...

다음으로 떠오른 문제는 습관이다

어렸을때 배운 장기 습관을 도무지 깨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렸을때 몸과 마음에 젖어든 편견과 습관을 

편견인지 습관인지도 모른채 수십년 살다가

뒤늦게 깨달은바 있어

나머지 생은 그걸 깨려고 분투하는데 바쳐지는것 같다.


어렸을때 좋은 습관을 들이되

그것보다 중요한건 타성과 편견에 젖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갖추고 유지하는게 아닐까 싶다. 

 

자연에서 배운다.  

계절은 그의 절정에서, 가장 아름다운때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떨쳐 버러지 않는가.. 


가을이 깊어간다. 

눈깜짝할 새 한해가 끝나간다


階前梧葉 已秋聲

계단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 주자(朱子)의 권학(勸學) 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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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 * * *

 

 

이제는 감꽃이 피어도 아무도 그 떫은 꽃을 먹지 않는다. 밤새 떨어진 감꽃을 주워다 목걸이를 만들지도 않는다. 감꽃 필 때 올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으라는 농부의 지혜도 옛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소년들이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있을 것이고, 그 뉴스를 보며 누군가 천연덕스럽게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바퀴소리, 시계소리, 벨소리…. 이 봄날에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세고 있나.


 -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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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 한마리

몸집도 큰게 어찌나 재빠르게 잘 숨어 다니며 쓰레기봉지를 물어뜯어대는지..

낮에는 어디서 무얼하는지 모르지만 밤에는 사람만 지나가면 차 밑으로 숨기 바빴던 녀석..

한달동안 그냥 차를 세워놓았더니 내 차밑을 집으로 여겼었나보다..

타이어 펑크난걸 수리하려고 어제 아침에 차를 빼고보니 이녀석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니..아주 영원히 잠이 든것이다..꼭 편안히 자는것처럼..

사실 아침부터 고양이가 죽어있는걸 보니 영 안좋았는데 출장갔다가 일찍 퇴근해서 집앞에와보니 아무도 치우지 않은채 그대로 있구나..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다가 깜짝깜짝 놀라고 하길래  흙과 수건을 덮어주고 구청에 전화하니 금방 작업차가 와서 고양이를 실어간다..

아까 덮어주었던 흙을 치우다 보니 이녀석이 물어다 놓은 뼈다귀며 휴지조각이며 쓰레기들이 왠지 쓰레기로만 보이지 않았다.  유품들처럼....

이녀석도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나르던... 누군가의 어미였을지도 모르는데..

요즘은 개나 고양이도 팔자(!)가 좋으면 왕자나 공주 취급을 받고 편안히 살수 있는 세상인데..

이녀석은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걸까...

가을날 차가운 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양이를 추모한다..

부디 잘가거라..편안한 곳으로..


2004. 10. 5.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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