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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Thank You 땡큐 -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
존 크랠릭 지음, 차동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리라."
존 크랠릭이 가장 힘든 시절,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새해 첫날에 혼자 산길을 걷다 길을 잃고 지쳤을 때,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에 들린 음성이다. 정말 신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그 상황에서 다른 생각들과 아무런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는 이 말들이 귀에 들린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좋은 말이지만 말과 글로만 접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그저 교과서에나 나오는 진부한 단어로 밖에 남지 않는다. 존 크랠릭은 할아버지로부터 감사편지를 쓰는 것을 처음 배웠다. 할아버지는 어린시절 1달러짜리 은화를 주시며 그 은화에 대해 대한 감사편지를 쓰면 은화를 한 닢 더 주신다고 약속했었다. 그게 바로 감사편지의 효력이라는 말과 함께.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진짜 가르치고자 했던 진짜 교훈은 알지 못했지만 막다른 길에 서있는 현재의 존 크랠릭은 불현듯 들려온 그 음성과 할아버지가 알려주려고 했던 교훈, 그리고 쓸모없게 된 봉투들을 처리하기 위해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말이 옳다면 그는 그가 보낸 감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거였다.
그는 생각보다 복잡한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 두 명의 이혼한 아내와 성인이 된 두 아들, 그리고 일곱 살의 딸과 현재의 운명같은 애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일은 꼬일대로 꼬여 예금은 남아있지 않고 사무실은 빼야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낡은 아파트마저 골칫거리다. 그런 그에게 감사편지라니,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성 없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이 부분에서는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 그에게 '감사'의 상대가 존재할까. 예전에 TV에서 했었던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그다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 만큼은 다들 누구보다도 부자였는데, 그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늘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었다. 오늘 낮에 본 어떤 한 수녀의 인터뷰에서도 '감사'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감사'라는 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에든, 누구에게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질까. 내가 감사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있고, 나를 보호하는 느낌이 들어 엄마품에 있는 어린아이 같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의 시작은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존 크랠릭이 감사편지를 통해 감사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칫 긴 감사의 글이 될까봐 그는 작은 작은 쪽지에 최근에 해준 좋은 일 한 가지와 그것에 대한 감사에만 초점을 둔다. 이를테면 매일 가는 카페의 직원의 친절에 감사한다던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라던가, 같이 일하는 성실한 직원에 대한 고마움이라던가 그런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감사에 대한 것이다.
"감사하기"라는 말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살자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새해 계획처럼 잊혀지기 마련이다. 저자처럼 감사편지를 주위의 고마운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일상해서 감사함을 늘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직원에게 습관적인 말이라도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 하는 것. 이런 작은 것을 시작으로 늘 작은 것에 감사하다 보면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돌고 돌아 할아버지의 은화처럼 나에게 더 큰 따뜻함을 가져다 줄 거라 생각한다.
365 Thank You는 존 크랠릭의 감사일기 같은 느낌의 책이다. 그래서 문체도 딱딱하지 않아서 잘 읽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시각적인 요소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편하게 읽히는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너무 진부하고 지루해 보이는 책의 표지는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젊은 독자들의 기회를 뺏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