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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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난 이제 죽게 될 거야'
이 놀라운 인도계 16살 소년의 표류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인도 폰디체리 동물원 경영자의 아들이요 힌두교 카톨릭 이슬람교 신자인 피신 몰리토 파텔은 망망대해 태평양 구명보트 하나에 의지한 채 조난당한다. 그것도 다리 부러진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하이에나와 200kg이 넘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일단 난 종교에 대한 파텔의 열린 태도가 마음에 든다.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는 간디의 말처럼 -본문에 나온다- 다른 종교를 배격하는 유일신 신앙 보다는 비슈누신이든 알라든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 그런 열린 태도가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은 신념을 낳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파텔이 겪은 이야기를 작가가 옮겨적는 형식이다. 독자에게 실화라는 인식을 줌으로써 식충섬 같은 믿기어려운 이야기의 짐을 덜어주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보인다. 아니,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동화 같은 환타지를 꿈꾸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흐름을 바닷속 모습, 리처드 파커 조련, 낚시 이야기 등으로 다채롭게 이어갔다. 놀랍고 흥미진진했다. 별점 다섯개의 마지막 별이 꿈틀꿈틀 별 하나 더 토해낼 만큼.
"제가 두 이야기 다 해드렸죠"
"그렇죠"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그거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동물이 나오는 쪽이 더 나은 이야기 같아요"
"고맙습니다. 신께서도 그러시길"
하, 마지막까지 흥미로운 소설이다.
이제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됐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보자.
발췌할 부분은 너무 많아 생략, 다시 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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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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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내가 쓸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권위있는 문학상 수상작과의 딱 그만큼의 거리가 별 거 아닌 것 싶어도 딱 그만큼의 거리만큼 절망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아마 초등학생 시선으로 그린 성장소설이기 때문이리라.
7,80년대가 배경이지만 문장이 세련되고 비유가 참신해 읽는 즐거움이 있다. 아쉬운 건 과도한 수식어구(형용사, 부사)의 사용이 오히려 핍진성을 가로막는 느낌이다. 좀 더 간결하게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고부 갈등, 선생님의 사랑 같은 자잘한 이야기 흐름 속에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것도 동구의 잘못으로- 긴장감과 작품의 질을 상승시킨 효과를 낳았다.
가난한 달동네에 능소화와 황금깃털 곤줄박이의 아름다운 정원이 남은 것처럼,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동구의 마음 속에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마다 그 정원의 모습이 잘 간직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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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의 밀알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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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먼 나라 케냐 이야기임에도 낯설지 않은 까닭은 식민 지배를 당한 가슴아픈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비장함이 흐를 줄 알았는데 담담하고 서정적이다. 단아하고 조급하지 않은 문장이 아름답다.
키히카의 숭고한 희생이 독립의 한 톨의 밀알이 되었듯 무고의 용기있는 고백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화합의 씨앗이 되었다. 비록 배신의 댓가로 인간적 고뇌에 휩싸이게 되지만 그 모습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카란자에겐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기코뇨와 마을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와 살아갈 힘을 주었다.
무고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본다. 격변의 시대에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영혼은 없다.
뭄비에게 손을 내미는 기코뇨의 마지막 장면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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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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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단순한 팩트를 나타내는 말이라면 추억은 주관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은 말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각색을 밥먹듯이 하여 저장한 마음의 양식이란 뜻일 거다.
그나마 이 책이 '추억팔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시대의 아픔과 가난을 이겨내는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건 재미가 별로인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점이다.
제목이 궁금했는데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두 번 나온다. 하나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침 속의 열강이고 비오는 날 화재 속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다. 하지만 유장한 역사의 흐름 속 '나 여기 있소' 포효하는 작가의 외침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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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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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온 한 아버지의 우화. 5,60년대의 중국이 배경이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한없이 고단하고 비루한 삶이지만 밝고 해학이 넘쳐난다. 남의 아들을 키우는 자라 대가리 짓을 -중국 남자에게 최대 욕이란다- 마다 않은 허삼관의 우직함, 가족애와 양심에 연민을 지울 수 없다.
간결하고 멋부리지 않은 문장이 인상적이다. 피를 팔고 돼지 간볶음에 데운 황주 두 잔. 왠지 힘이 솟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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