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1~5 세트 - 전5권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이꼴 지음, 가비 그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감수 / 다산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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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박사의 추천 그림책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아이가 자기 주관을 가지며 타인의 눈치 없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길 원하는 부모님들에게 나 역시도 추천하고픈 그림책이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그림책은 아이가 성장해나가는데 필요하고, 관심 있어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성평등 교육을 위한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그림책 '당당하게 나답게 시리즈'

 

 

요즘에 와서야 젠더교육이라는 말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여자가 어찌 그렇게 조신하지 못해', '남자가 그깟 일로 울면 돼?'라는 식의 성에 국한된 말이 자연스레 통용되었다. 그런 시대에서 살아온 내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성평등 교육을 해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좋겠다 싶던 차에 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났다.

 

 

총 다섯 권의 그림책은 각 권마다 다양한 성평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권 '모두의 장난감'에서는 여자 것, 남자 것 등 장난감에 뿌리 잡힌 성고정관념에 관한 이야기

2권 '무엇이든 될 수 있어'에서는 다양한 직업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의 을 더 확고하게 해 줄 이야기

3권 '아빠의 마음 날씨'에서는 감정 또한 드러내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이야기

4권 '함께하는 저녁시간'에서는 집안일은 여자일이 아닌 공동이 수행하는 일임을 알려주는 이야기

5권 '달라도 괜찮아'라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이야기

 

 

이 시리즈가 젠더교육을 하는데 더한 도움을 주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은 가이드북이다. 가이드북은 부모에게 올바른 지침서의 역할을 해줌과 동시에 아이들과 다양한 대화거리를 제공해 준다.

 

하나의 예로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우리에게는 조금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함이 가득 묻어나는 질문이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런 질문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사실에 기초에 이야기 나눠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불렀을 동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다른 동요는 가물가물한데 이 동요만큼은 율동과 함께 자동 재생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요즘처럼 지구촌이라는 말이 더 가까워지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세상을 무대로 서는 자랑스럽고 멋진 한국인들을 보자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우리 아이들도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당당하게 우뚝 섰으면 좋겠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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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1 : 모두의 장난감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 1
이꼴 지음, 김기린 그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감수 / 다산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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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안에는 플레이타임이라는 명칭을 지닌 놀이시설이 구비된 장소가 있다. 매주에 세 번 그곳에 가서 놀곤 하는데 키즈카페 부럽지 않다. 그곳에 놀기 위해선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발레슈즈를 신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의 발이 커져서 새로 발레슈즈를 구입해야 했다. 지난번에는 엄마 임의대로 검은색을 사주었는데 이번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여자처럼 핑크색 슈즈를 고르는 것이다. 올바른 성역할 학습을 위해 '안돼!'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말?', '괜찮겠어?', '후회하지 마!'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의지가 확고해 핑크색 발레슈즈를 사주었고 아이는 꽤나 만족스러워하며 잘 신고 다닌다.

 

아이는 핑크는 여자색 블루는 남자색이라 이분법적 사고로 규정하지 않는데, 엄마인 내가 문제다.

아이가 당당하고, 나답게,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 이 그림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성역할을 주입시켜주는 것이 지천에 널려있다. 직업을 예로 들면 여의사, 여경찰이라고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나 경찰은 으레 남자들이 하는 직업이란 의식이 팽배히 자리 잡은 까닭이다. 나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 오랫동안 살아오다 보니 딸은 여자답게, 아들은 남자다운 행동을 하기로 무의식 속에 가르쳐왔던 듯하다.

 

이번에 다산어린이에서 나온 그림책 시리즈 '당당하게 나답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아이가 타인의 눈치를 보고, 부모의 종용에 의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총 5권의 시리즈 중에서 '모두의 장난감'이라는 제목의 책은 아아들에게 가장 친숙한 장난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주 인형은 어여쁜 드레스를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으며 미모를 뽐낸다. 영웅 캐릭터는 합기도와 태권도에 단련된 듯 탄탄한 몸에 그 어떤 흉악범에도 겁먹지 않고 맞서 싸운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그릇된 판단이 실린 역할 놀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 과연 인형들도 그러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이 놀고 떠난 밤늦은 시간의 장난감 가게. 그곳에 거주 중인 장난감들은 낮 동안 힘들었던 일을 하소연한다.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티라노사우르스라니.

"나는 스피노 사우르스랑 하루 종일 싸웠어. 어린이들은 나를 용감한 공룡으로 알고 싶지만, 사실 겁이 많아."

이 책을 본 아들의 반응은 '이상하다?'라며 아리송한 표정이다. 그러면서 '아닌데, 티라노는 센데...'라며 그림책을 부정하는 듯한 아이.

 

 

공주 인형은 공주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활동하기 좋은 옷으로 입는다. 그리고 멋지게 운전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공주 인형을 보자니 유쾌 통쾌 상쾌한 매력이 넘친다. 힘센맨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형의 집 속 청소하기. 다소곳하게 앉아 빨래를 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파마를 제법 잘 마는 티라노 공룡과, 기다란 다리로 통쾌하게 골대에 축구공을 날리는 공주 인형.

장난감 인형들은 밤에 본래의 모습으로 신나게 노는 것이다. 그리고 열두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아침이면 자신을 감추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번에 장난감들은 이번 한 번만 이대로 있어보려고 한다. 이를 본 어린이들은 처음엔 낯설어하는 듯 싶다가도 곧 어색해하거나 쭈뼛거리는 법 없이 새로운 놀이를 하게 된다.

 

 

어린이들의 학습능력을 두고 스펀지 같다는 말을 한다.

방법을 몰라서 그럴 뿐,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아이들은 금세 새로운 역할놀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이의 잠재된 자질을 꺼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부모가,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더없이 반가운 그림책이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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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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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 대치동.

그곳에 가고 싶은 자는 많으나 쉽게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대, 또 우리는 왜 그렇게 대치동에 열광하는가?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보다는 넓은 물에서 놀라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 그중에서도 대치동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이 몰려든다. 본래 그곳에 살았던 대원족(대치동 원주민)부터 대전족(대치동에 전세로 거주하는 자), 원정족(원거리 거주 대치동 학원 이용자) 등 대치동에 가면 좋은 대학은 따놓은 당상인 것처럼, 아니 남들이 하는 것만큼이라도 하려고, 마치 그게 도리인 양 몰려드는 것이다.



"대치동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라도 실상 살 떨리는 긴장감이 흐르는 세계다. 모두 얌전한 아이인 척, 신사와 숙녀인 척 살지만 자신의 몫을 지키고 더 많은 몫을 얻기 위해 촉수와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책 내용 중 일부)



이 책은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모여있는 곳 '대치동'에서 30여 년간 교육현장에 몸담은 저자가 보고 듣고 느껴온 모든 것을 기록된 책이라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관조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 사실과 경험이 녹아있기에 몰입감 있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2020년을 마지막으로 교육계에서 발을 벗어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치동'에 대해 기록하였다.  



서점에 가면 자녀교육서로 '대치동'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대치동 아이가 하는 것처럼 따라 하라고 적극 권장하는 류의 책이다. 그런 류의 책들과 이 책은 좀 다르다. 교육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해서 대치동이라는 곳에 학원가가 밀집되어 있고 부동산 값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지 이해를 시켜준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 변천사와 그에 따른 대치동의 성공 스토리, 그리고 대치동에 거주하는 자들의 목소리, 마지막으로는 더 나은 교육의 질을 위한 저자의 염원과 이상이 담겨있다.


내가 이 책에 유독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수능시험의 불합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수능으로 인해 당락이 좌우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문제라 칭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이는 적다. 아니 이미 몇십 년간 곪을 때로 곪아버린 일이라 터부시되는 것일지도.


한 번의 시험과 그에 따른 결과로 얻는 꼬리표는 평생을 걸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대학제도와 학벌주의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대치동으로 쏠리는 것. 저자의 말대로 우리들은, '대학에 가서 스스로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자신을 꾸미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다. 



대치동은 교육열과 부동산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세속적 욕망의 최전선이다. (중략) 학벌과 부동산을 통한 계급 상승 혹은 유지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 120)



2000년대에 접어들어 시끄러워진 대치동에서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에서 학원으로 쉴 틈 없이 배달되었고, 대치동 놀이터의 그네들은 흔들리는 법을 망각한 듯 온종일 수직으로 지구의 중심을 향했다. (p. 154)



우리 교육의 씁쓸한 한 단면을 보니 마음에 공허함이 가득하다. 놀이터가 아닌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천진난만함과 바꿔버린 그들의 앞날에 찬란한 무지갯빛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누구 하나 닮은 이가 없다.

모든 이가 완벽하게 동그라미이지도 않고,

모든 이가 완벽하게 세모이지도 않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일단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최우선 과제인 것은 어찌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 중엔 소위 좋은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도배사나 청소 등 블루칼라의 직업을 택하기도 한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점에서

열정페이의 그늘 안에 가둔 것보다 더 멋진듯하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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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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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생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고난 후, 그녀의 글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들은 책 안에서 그녀의 숨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심연'이라는 이름의 사강의 미발표 유작이 국내 최초 번역으로 10월에 출간되었다. 2019년 출간 당시 독자들은 파리의 책방 앞에 길게 줄을 섰고, 파격적인 초판 부수가 단기간에 품절되기도 하여 사강의 위상이 건재함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사강의 미발표 유작을 만나는 이 순간, 설렘이 가득하다.




아들과 아버지, 남편과 아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진정한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각자 자기 재산과 권위를 틀어쥔 채 상대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p. 155)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 크레송 일가, 대저택에 살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그들은 동상이몽으로 마음만은 빈곤하다. 서로 간의 존중이 결여되고 남편의 기를 꺾어버리는 여자 마리로르. 그녀에겐 남편은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라는 것을 빼고는 결점투성이의 인물일 따름이다.


삶은 투쟁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주도권을 쥐어야 했고, 승자는 언제나 예외 없이 그녀, 마리로르였다. (p. 43)


더욱이 교통사고로 정신병원에 2년간 요양하고 돌아온 후로 마리로르의 경멸 어린 시선은 짙어졌다. 노골적으로 남편을 깎아내리며 무시하는 시선을 주곤 했다.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마리로르. 아름다운 얼굴처럼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예뻤다면 좋았으련만.


어린 시절부터 애정에 굶주린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불구자 같은 존재로 여겨 왔었는데, 그 사고로 인해 공식적으로 불구자가 되고 만 것이다. (p. 164)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돌아온 남편 뤼도빅은 집에 와있음에도 더한 마음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 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 분명한 결혼, 그 안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 따윈 없다. 혐오의 눈빛, 2년간의 긴 요양생활 후 온 집은 그에게 생의 마지막을 고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뤼도빅의 아버지인 앙리는 며느리가 못마땅하다. 착하고 여린 아들과 한 침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앙리에게 며느리 마리로르는 예쁘장한 얼굴을 한 살인자와 다름 아니었다.


아들이 건재함을 과시해주기 위해 아버지 앙리는 파티를 열고자 한다. 그러던 차에 안사돈까지 부르기에 이른다. 파티도 있고 소원한 딸내외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주십사 요청하고픈 마음이 담겨있을 터. 뤼도빅의 장모이며 마리로르의 어머니인 파니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홀로 지내다 3주간 머물기 위해 크레송 일가를 찾아왔다.



차디찬 얼음장같은 아내와 달리 아내의 어머니인 파니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다. 마리로르의 냉대와 경멸에 굳어버린 남자 뤼도빅은 파니로 인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흡사 막장드라마처럼 엄마와 남편이 정을 통하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이 파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를 담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는 소설 안에서만 있기를 원한다.

소설이기에,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며 넓은 아량을 베풀어본다.

소설 속에선 그 어떤 상상의 나래도 다 수용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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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들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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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변함없이, 한결같이.

등대지기들이 지니는 고독감 같은 건 그들이 감내해야 할 사명 같은 것이라 생각해왔다.

올여름, 바닷가 여행 중에 만난 등대(본래의 제 역할에서 벗어나 관광상품 내지는 학습용으로 물러난 등대)를 호기롭게 올라가 보았었다. 둥그렇게 설치된 계단 따라 위로 올라가 보는데 잠깐임에도 머릿속이 빙빙 돌 것만 같았다. 갇힌 공간, 빠를 듯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그들의 사명이라고만 보기에 용기 내지는 정의감 같은, 엄숙하고 심오한 뭔가가 필요해 보였다.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라고 적힌 붉은 띠지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 옆에는 보기 좋게 한창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작가의 평또한 궁금증을 배가시킨다. 기대감을 품고 든 책이 제법 묵직하다. 휘리릭 책장을 넘겨본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올 듯하다.


소설 '등대지기들'은 해상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메이든 록 타워 등대를 지키는 세 명의 등대지기들이 물처럼 증발한 듯 사라져버린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제 사건인 1900년 스코틀랜드 앞바다의 엘런모어 섬의 등대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에 작가의 추리력과 상상력이 더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1972년 겨울, 바다의 한 등대에서 등대원 세 명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일련의 단서들이 남아 있었다. 출입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두 개의 벽시계는 같은 시각에 멈추어 있었으며, 식탁에는 식사를 앞둔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p. 36)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고립된 곳 해상 등대, 그곳을 지키는 세 명의 건장의 사내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나고야 말 것 같은 상황이다. 더불어 자연이 뿜어내는 높은 위엄 앞에 등대는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사라져버린 그들, 이 사건은 자연재해일까 인재일까?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면, 내가 깨닫기도 전에 몇 시간이 며칠이 되고, 낮이 밤으로 접어든다. 달력 위에 날짜를 지워나가야 흐르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p. 176)


처음엔 이 소설을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보단 개개의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심리 소설이라 봐야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소설은 사건이 발생된 1972년 세 명의 등대원들의 목소리,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남겨진 가족들인 그들을 사랑했던 세 여자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각각의 인물들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어 사건의 잔상을 파헤쳐 나가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라고 모두에게 베스트이진 않는 법이다. 이 소설은 서정적이고 심리적인 묘사를 원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좋지만, 다이내믹한 긴장감을 원한다면 구미에 맞지 않을 소설이다. 그래서랄까. 풀리지 않을 듯한 이야기에 맥이 빠져버린 것은 사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작가가 그려내는 필력에 있었다. 눈에 담는 배경 하나하나, 인물의 자그마한 행동도 놓치지 않는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에 마음이 동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흡사 고체인 듯,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공기는 술잔 속의 얼음조각인 양 어부들의 오두막들 사이에서 짤그랑거린다. (p. 13)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공기가 짤그랑거린다는 식의 표현은 자꾸만 소설 속 장면을 떠오르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등대지기들은 8주를 바다에 우뚝 솟은 타워 등대에서 보내고 4주를 집에서 보내는 생활을 한다. 보이는 것은 하늘이요, 물 뿐이다. 좁은 공간에서 나이도 성격도 다른 이들이 모여있다면? 작가는 사라진 등대원들은 다름 아닌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의 등에 칼을 꽂은 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들이었다. 그 과정까지 다다르는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단연 눈에 띈다.



묵직하고 축축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실제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져 장편소설이 탄생한 것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제 나는 눈을 감아도 등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질 것만 같다.

요 며칠간 이 책이 나에게 머물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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